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보석을 허가했던 재판부가 “검찰은 피고인의 직권남용 혐의가 맞는지 의견을 내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1심 재판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고 있는 가운데, 사법농단 사건의 키맨으로 불리는 임 전 차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는 16일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성립 여부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열린 이날 첫 재판에서 “계속 중인 사건의 재판사무에 관한 사법행정권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달라”면서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에게 재판사무에 대한 직무감독권한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구체적으로 검찰에 주문했다.
재판부가 요구한 쟁점은 앞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1심 선고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법리와 다르지 않다. 검찰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의혹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했지만,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는 사법행정권자의 직무 권한으로 볼 수 없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의 의도는 임 부장판사 사건 판결의 법리를 임 전 차장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또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기반으로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보고가 직권남용죄에서 이야기하는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도 밝혀달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상고심에서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요청을 받고 단순히 협조하는 것까지 ‘의무 없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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