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얼굴들에 익숙해진 2020년의 봄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외출을 줄이고 개학도 행사도 모두 미뤄진 시기. 하지만 동시에 평소라면 알지 못하고, 알려 들다가는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거부당했을 개개인의 동선과 종교가 세상에 알려지는 때다. 거리의 인적은 드물어져도 누군가들의 모습은 오히려 드러나는 셈이다.
내 이십 대는 IMF사태로 사회 전반이 불황이던 때였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했던 대학생활은 꿈꾸던 만큼 즐겁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어떤 사회적 가치가 중요했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보다 자조와 냉소 속에 낙오되지 말라는 경고만 크게 들려왔다.
그런 불황 속에 ‘다단계 회사’가 극성이었다. 오랜 친구였던 유미(가명이다)까지 휴학을 하고 그 합숙소로 들어갔을 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그런 세계에 합류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고 여겼던 내 은근한 교만과 방심을 흔들었다. 유미는 공부도 잘하고 누구보다 성실한 친구였다. 다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고 아픈 부모를 걱정하곤 했다. 만날 수가 없으니까 나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유미를 만류했다. 답신이 있든 없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유미가 얼마나 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받은 이메일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편지의 서두가 “내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는, 희망과 가능성과 미래가 있는 곳이었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야, 우리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 그 마지막 이메일은 다행히도 유미가 그곳을 빠져나와 복학한 뒤에 도착했으므로 나는 그게 아니었다는 말을 믿었다. 그 괘씸한 다단계 회사야 어떻든 유미의 마음만은 믿어주어야 할 듯했다. 유미의 희망, 유미의 기대, 애쓰고 싶었던 유미의 의욕과, 애쓸 방향과 목표가 필요했던 절박함 같은 것.
언론에 신천지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이십 년 전 그 유미의 얼굴을 떠올렸다. 신자 중 상당수가 청년들이라는 사실은 기시감이 드는 대목이었다. 다른 어떤 단체보다 ‘소속감’을 강조하고 마치 회사처럼 직급을 적용해 서로를 자리매김해 주기에 청년들이 더 강렬한 결속력을 느낀다는 것도. 자기 자리를 찾아 사회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젊은이들을 포박해 착취하는 과정은 당연한 듯 반복되고 있었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나는 그런 개인의 그릇된 선택에는 자기 자신의 맹신과 무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구조를 따지지 않고 개인들만 비난하고 더 나아가 ‘혐오’한다면, 그 또한 공동체의 맹목과 무지일 거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 동네만 해도 50년 동안 구두 수선 일을 해온 분이, 힘들게 마련한 땅을 코로나19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했다. 이웃들은 마스크를 업무량이 폭증한 택배기사들에게 양보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사태의 최전선에서는 의료진들이 빛나는 희생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을 나눠 가질 대상이 세상의 ‘유미들’을 뺀 나머지라면 비싼 값을 치르며 찾아낸 그 얼굴들을 다시 잃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청년들을 돕고 미래를 열어 보이는 일에 사회가 나서야 한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 가운데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머지않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마스크 없이 각자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는 날,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로 목격한 일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 나는 그것이 두렵고도 기대가 된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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