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잠시 잊고 창밖 감상을” 위로 멘트한 지하철 기관사
자신 영업보다 확진자 손님 더 걱정하는 빵가게 안내문
성금 모은 중국인유학생… 배척과 갈등 넘어 서로 위로
많은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탈 수밖에 없는 지하철,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동네 가게, 왠지 일단 피하고 싶은 중국인 유학생…. 이 배척된 공간과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로 시름하고 있는 세상을 어루만지며 손을 내밀고 있다.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지난 주말 서울 지하철 2호선의 한 차량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 14일 오후 5시 40분쯤 박영록 기관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합정역과 당산역을 잇는 당산철교를 지날 때였다.
“지금 우리 열차, 한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가시는 길 바쁘시더라도 창 밖으로 잠시 여유를 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중략) 가지고 계신 코로나에 대한 걱정 모두 두고 내리시고 따뜻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마스크를 쓴 채 휴대폰을 보고 있던 승객들은 깜짝 놀랐다. 열차에서 만난 이우리(가명ㆍ22)씨는 “자가용 승용차가 없어 지하철을 이용한다”며 “탈 때마다 긴장의 연속인데, 기관사의 방송에 불안하고 위축됐던 몸과 마음이 살짝 녹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이후 수소문을 해서 찾아낸 박 기관사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지하철을 타는 모든 분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며 “붉게 물들어가는 한강 풍경에 승객들이 잠시나마 걱정을 내려놓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지하철에 대한 불안감도 시민들이 덜었으면 하는 바람에 방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여파로 서울의 지하철 이용객은 작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방송 아이디어도, 스피커로 나간 멘트도 올해로 입사 5년차인 박 기관사의 것이었다.
코로나19가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고, 겨울 아닌 겨울을 보내고 있는 상인들이지만 경기 의왕시 오전동의 빵 가게 대표가 붙인 안내문 한 장은 꽁꽁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고 있다. 확진자가 가게를 다녀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님이 뚝 끊긴 곳이다.
‘역학조사관과 폐쇄회로(CC)TV로 확인하니 확진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빵 구매 내내 계속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제가 본 그분은 질병을 조심하는 우리와 같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손님의 행차로 가장 큰 피해 당사자였지만, 그 확진자를 향해 쏠릴 혐오를 걱정하며 내민 온정의 손길이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코로나로 위기가 지속되자 과도한 혐오와 공포가 공멸을 낳는다는 위기 의식을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서로 위로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도 신종 코로나가 일깨운 공존의 중요성에 동참한 경우.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중국인 유학생 47명(졸업생 포함)은 268만원을 모아 성북구에 기부했다. 올해 졸업한 우한 출신 중국인 대학원생은 “내가 어려울 때 한국 정부와 사회단체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한 마음 항상 간직하겠다. 한국도 빨리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오히려 사회 갈등만 키우고,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행동으로 평가된다.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는 “국내 소규모 지역 확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세계 전방위적 확산으로 이젠 누구라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란 이분법적 시선을 넘어 상대적 관점에 대한 이해의 시선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려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의 움직임”이라고 진단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