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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코로나 사태 속 친구의 부친상

입력
2020.03.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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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0일 휴대폰을 울린 문자메시지 한 통. 대학 친구 아버지의 부음이었다. 별세는 그날 오전인데 빈소는 이튿날 준비된다고 알렸다. 발인은 그 다음날인 12일. 날짜를 따지면 3일장이지만 문상객을 맞는 건 단 하루뿐인 장례식이었다.

빈소가 준비된 날 저녁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은 머리에 그린 그대로였다. 2층 복도 맨 끝의 친구 아버지 빈소로 걸어가며 스친 빈소들은 텅 비었다. 수도권에서도 집단감염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 복도에 늘어선 흰색 조화들은 변함이 없었지만 조문객의 발길은 끊겼다. 감염을 우려한 상주들은 마스크를 쓴 채 빈소를 지켰다. 옆 빈소에서도 조문객이 없어 유족들끼리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다.

마스크를 벗고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상주인 친구는 종이컵에 소주를 한 잔 따라줬다.

5년 전과는 정반대였다. 그때는 내가 상복을 입었다. 폐암으로 눈을 감으신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친구는 장례 이틀째 빈소를 찾았다.

2015년 봄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기승을 부린 시기. 병원에서 2차 감염이 발생해 장례식장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지인들에겐 먼저 오지 말라고 했다. 조문객이 예상보다 적어 주문한 음식이 남았다. 좋아하는 육개장을 삼시세끼 퍼먹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빈소에서 마스크까지 쓰진 않았다.

그런 때 상갓집에 와준 친구다. 신종 코로나로 장례식장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여도 무조건 가야 했다. 한편으론 유난히 짧은 장례 일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소주가 두어 잔 돈 뒤 장례식장 공식 질문을 던졌다. 별세 경위와 빈소 선택 이유, 장지 같은 거 말이다. 몇 가지 의문은 금세 풀렸다.

순환기 쪽에 지병이 있던 친구 아버지는 별세일 오전 아파트 앞에서 쓰러지셨다. 곧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폐에 이상 소견이 나왔다. 때가 때인 만큼 신종 코로나 검사가 먼저였다. 유족들은 자가 격리를 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빈소를 준비했다. 만약 ‘양성’이었다면 당장 장례를 치르는 게 불가능했다.

문상객을 단 하루만 맞게 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장례식장 예약 과정에서 고향과 조문객 규모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친구 아버지 고향이 경북지역인 게 문제였다. 고인은 최근에 TK(대구ㆍ경북)를 다녀오지 않았다.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장례식장에서 걱정한 건 부음을 듣고 TK에서 찾아올 조문객이었다.

계약을 끝낸 뒤 장례식장 관계자가 뒤늦게 전화를 걸어 취소를 요청했다고 한다. 해당 병원은 얼마 전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 한 차례 폐쇄하고 방역을 하기도 했다. 친구 아버지 장례는 이미 하루가 지연된 상태. 근처 다른 장례식장에서 예약을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족들은 TK지역에서는 조문객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애초에 조문을 받기 힘든 처지라 굳이 이틀간 빈소를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친구는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보내 드릴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로 당연하게 여긴 일상이 뒤틀렸다. 메르스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파장이다. 감염 공포가 퍼지며 혐오는 증폭됐다. 중국인에 이어 신천지예수교, TK 지역으로 혐오의 대상은 확대됐다.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에게는 조롱이 쏟아졌다. 사태 초기 국정 책임자들의 섣부른 낙관은 정책 불신을 불렀다. 국민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몇 주를 동분서주했다.

빈소를 나서며 친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기운 내고 마스크 잘 쓰라고. 새 마스크라도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진 게 내 입 가릴 한 장뿐이었다.

김창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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