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희 이란 한인회장이 전하는 현지 상황]
200명 교민 중 절반이 귀국 원해… 항공 사정으로 한국 출발 무산
부통령 국회의원까지 연달아 확진 ‘테헤란 봉쇄’ 소문에 사재기 극심
이란에서 하루 100명이 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현지에 있는 우리 교민들의 공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란은 15일 낮 12시(현지시간) 현재 확진자 1만3,938명, 사망자 724명으로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번째 취약지대다. 특히 최대의 명절인 ‘노루즈’(20일)를 코 앞에 두고 감염 공포와 가짜 뉴스, 민생고가 극에 달한 이란에는 20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이중 100여명이 귀국의사를 표명했으나 지난 주 이란 항공사 사정으로 수도 테헤란을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간 테헤란에 살고 있는 송은희(49) 이란한인회장은 16일 본보에 “테헤란이 봉쇄된다는 가짜뉴스로 최악의 혼란사태를 겪고 있다”면서 이같이 현지 사정을 전했다. 다음은 송 회장과 전화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일문일답.
_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테헤란 상황이 어떤가.
“여기도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부자들이 사는 북쪽 동네가 텅 비었다. 음식과 음료수를 비축해놓고 아예 외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시민들이 사는 남부지역에선 생계를 이으려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마스크는 구하기 힘들어 살 엄두도 못내고 있다. 최근엔 이란내 신종 코로나 진원지로 알려진 종교도시 곰(Qom)에서 공동묘지 구덩이와 시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주민들의 영상이 퍼지면서 전 국민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_군대도 동원됐다고 하는데 통행이 통제되는 상황인가.
“남동쪽 항구도시 차바하르가 봉쇄됐다. 22개주가 타 지역 차량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테헤란 시민들의 이동으로 신종 코로나가 확산된 카스피해 지역에선 경찰은 물론 시민까지 나서서 통행을 막고 있다.”
_가짜뉴스가 현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나.
“매일 가짜뉴스 홍수 속에 살고 있다. 14일에는 테헤란이 봉쇄된다고 해서 식자재를 사재기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였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봉쇄는 절대 없다’고 성명을 발표한 후에야 잠잠해졌다. 며칠 내 테헤란에 소독약이 비처럼 뿌려지는 항공소독이 시행된다며 외출을 자제하라는 가짜뉴스도 퍼졌다. 봉쇄나 통제는 고사하고 가짜뉴스라도 막아주면 불안감이 덜하겠다.”
_우리 교민들의 상황은 어떤가.
“유학생과 주재원 등 한국 교민은 200여명 규모다. 그 중 100여명이 귀국을 신청해 당초 13일 테헤란을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교민들은 이란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마한항공을 이용해 두바이로 가서 대한항공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마한항공 사정으로 출발이 무산됐다. 다시 출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_수석부통령과 국회의원 등 국가지도층은 왜 감염자가 많은가.
“이란에서 첫 사망자는 중국을 2회 다녀온 사업가다. 지난달 19일 첫 확진자가 나온 곰에는 중국인 신학생이 700명 가까이 있다. 중국 연관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도층의 안일한 대처가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이란 방송에선 한 주 전까지도 신종 코로나를 일반 인플루엔자처럼 보도했다. 보건부차관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도 그 증거다. 국회의원들이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정부가 긴장한 것 같다. 수석부통령 확진은 큰 충격을 줬다.”
_이란은 새해 명절 ‘노루즈’를 앞두고 있는데.
“일부 시장에서 노루즈 특수를 노려 영업을 하고, 사람들도 몰리고 있다. 많은 주가 외부 차량 진입을 차단키로 했고 문화재관리국도 관광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으로 나가는 항공도 모두 끊어진 상황에서 새해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사람 정서상 가족들의 새해인사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노루즈를 앞두고 비상이다.”
_의료수준이 꽤 높다고 알려졌는데 알코올을 마시고 죽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나.
“이슬람국가인 이란에선 음주가 금지돼 있지만 소독용 알코올은 평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다. 방송에서조차 라벤터 오일과 마늘, 알코올 소독을 권장하던 터라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체내 소독을 위해 마신 것 같다. 아흐워즈라는 지역에서 51명, 펄스에서 26명이 숨졌다.”
_미국의 금수조치가 사태를 키웠다고 보나.
“이란은 의료수준이 높은 나라지만 오랜 경제제재로 의료기기가 많지 않은데다 노후됐다. 신종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는 이유는 정부가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지만 절대적으로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생산되는 진단 키트도 없다. 40년 경제제재 중인 미국이 의료진을 보내준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도움을 주려면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대한 경제제재를 중단하는 게 급선무다. 국회의장이 세계 여러 나라에 금수조치 중단을 촉구하고 있으나 미국 눈치보는 나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모르겠다.”
_이란의 전체 상황이 어떻게 될 것으로 예측하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50억달러 규모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962년 이후 58년 만이다. 사실 답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부족한 예산을 메우던 터라 신종 코로나 긴급 예산을 편성할 수가 없다. 확진자 격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40년 경제제재를 겪고 있으면서 이런 사태를 진정시킬 수는 없다. 여름이 돼 자연적으로 움츠러들기를 기대할 뿐이다.”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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