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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혼자라도 괜찮아, 함께라면

입력
2020.03.1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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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보건소 구내식당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마주보지 않고 한 줄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 논산시 보건소 구내식당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마주보지 않고 한 줄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서도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일상이 되었을 일들이 이곳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가 속속 취소되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다음 주부터 휴교령이 내려졌다. 내가 일하는 대학도 다음 주 봄방학 이후부터 온라인 강의로 전환한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느라 허둥대는 중에 지난 주 아마도 이번 학기 마지막 오프라인 수업을 했다. 강의 끝에 학생들에게 봄방학을 즐겁게 지내고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하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봄방학을 앞둔 학생들도 즐겁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에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대학의 강의가 근본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일어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고, 잘 준비된 온라인 강의로 같은 내용을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배움의 폭과 깊이가 같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을 학생들도 공유해서였을까? 강의실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가 학생들에게는 배움에 대한 동기를, 교수에게는 좀 더 잘 가르치고 싶은 의욕을 부여한다는 진실을 우리는 쉽게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참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 삶을 의미 있고 살 만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것들은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을 제외하면 사회적 관계망과 상호작용의 밀도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가진 미국인들이 왜 더 높은 행복감을 보이는지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깊은 신앙심이나 종교적 신념보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교회나 사원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가 행복감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코넬대의 동료와 쓴 논문에서는 직장인들이 주말에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가 단순히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임을 밝힌 바 있다. 주중에 출근하지 않는 실업자들도 주중보다 주말에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데, 주중에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대부분의 사교 활동은 친구와 가족들이 시간이 되는 주말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관계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는 피로감이 올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이 늦잠을 잘 때 일찍 일어나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이는 토요일 아침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즐기는 시간의 행복감도 평소 사회적 관계의 밀도와 관련이 있다. 가령 주말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친구나 가족과 보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에도 더 높은 행복감을 보인다. 최근 한국의 동료 사회학자들과 같이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혼자 밥을 먹는 빈도와 고독감의 관계를 살펴 보았는데, 1인 가구 거주자들의 경우 혼밥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반면, 다인 가구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큰 관계가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행복감도 밀도 있는 사회적 관계의 안전망을 가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사회의 취약계층, 특히 혼자 사는 고령자들에게 코로나19는 바이러스로 인한 생명의 위협,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생계의 위협,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적 고립의 위협까지 겹친 삼중의 위협이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물리적 거리두기에 머물러야지 우리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로부터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적 고립이 아닌 더 강한 사회적 연대가 사회학자들이 내리는 코로나19 처방이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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