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하트시그널3 출연자 중 전직승무원으로 나오는 사람 학교 후배입니다. 그분 인성에 대해 팩트만 정리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누군가를 고발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전직 승무원’이라 지목된 사람은 25일 첫 방송을 앞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3’의 출연자 중 한 명 A씨였다. 게시글 작성자는 A씨가 대학생 시절 후배들에게 막말과 인격모독을 일삼았으며, 괴롭힘을 이기지 못한 후배 한 명은 자퇴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게시글이 퍼지면서 온라인 공간에선 순식간에 A씨의 직장, 얼굴사진 등을 파헤친 ‘신상털기’가 이뤄졌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A씨로 추정되는 사람의 실명이 오르내렸다. 이처럼 논란이 일자 프로그램 방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시청자들은 A씨의 하차를 방송사에다 요구하는 중이다.
이런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온라인에선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의 과거 행실을 둘러싼 폭로가 빗발치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당사자 가운데 일부는 프로그램 하차는 물론, 사회적 매장까지 당하고 있어 파장이 적지 않다. “악행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피해자들의 울분 한편으로는, “마녀사냥을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엠넷(Mnet)의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출연했던 아이돌 연습생 윤서빈이 과거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여 방송에서 중도 하차한 것. 이후 윤서빈은 소속사였던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마저 해지됐다.
2018년엔 하트시그널 시즌2의 출연자 김현우가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다. 심지어 2012,13년 두 차례 동종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방송사의 출연자 섭외절차가 허술했다”는 비판론이 일기도 했다. 2017년에도 엠넷 예능 ‘고등래퍼’와 ‘아이돌학교’에 출연했던 가수 양홍원, 아이돌 연습생 솜혜인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부분의 사건은 △출연자가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인기를 얻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온라인에 출연자의 과거 행실을 폭로한 뒤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는 공통점을 띄고 있다.
출연자의 자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난의 화살은 방송사를 향한다. 제작진에게도 검증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종합편성채널 소속 PD는 “일반인을 섭외할 땐 본인과 4~5차례 심층면접을 거쳐 과거에 문제가 될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검증한 뒤 주변 사람을 통한 평판조회까지 하고 있지만 본인이 마음 먹고 숨기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 소속 PD도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의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제가 있다면 방송이 끝나고 터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폭로를 결심한 이들의 동기는 비슷하다. “과거의 악행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방송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때문에 폭로는 가해자들이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해졌을 때 이뤄지곤 한다. 일반인은 아니지만 최근 가수 김건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도 고소 배경을 두고 “김건모가 방송에 자주 나와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특성상 폭로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가 없고, 설령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양홍원의 1집 앨범이 발매되자 일부 네티즌들은 “학교폭력 가해자의 음악은 듣지 않겠다”고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래퍼 스윙스는 “사람에겐 변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기사나 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번 논란이 기록되면 당사자들에겐 ‘낙인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부작용이다.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지만 과거보다 정보에 대한 접근과 유통이 손쉬워진 만큼 사회적 검증의 칼날이 매서워지는 현상은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인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이상 개인이 의견을 표출할 권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고, 대중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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