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일상을 잃었다. 우리가 견디고 있는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우리는 외출 전에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찾아 쓰며, 직장에서 퇴근 후 바삐 집으로 들어가거나 재택근무를 한다. 개학이 미뤄졌고 종교 행사나 스포츠 경기는 취소되었다. 식당에는 사람이 없고 여행은 요원하다. 우리는 사회적 고립과 거리 두기가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고립의 이유는 어쩔 수 없이 불신과 맞닿아 있다. 근본적으로 누가 감염자일지 알 수 없으니 거리를 두는 것이다. 타인은 잠재적 감염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길에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잠깐 잊어도 눈초리를 받는다. 그 안에서 각자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독하다. 고립, 타인, 불신, 이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키워드다.
잠시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길에는 모두 마스크 없이 얼굴을 드러낸 사람들이었다. 직장에 정상적으로 출근했고, 퇴근 후에는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종교 행사와 운동 경기장에는 많은 사람이 운집했고, 휴가에는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길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해도 '잠재적 감염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오래도록 살아 왔다.
이전의 순간들을 현재 기준으로 복기해 본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던 일상과 모임은 바이러스를 공유하던 행위였을까. 틀리지 않은 사실이다. 학교나 직장, 모임에서 다양한 바이러스는 계절과 시기를 따라 유행했다. 사람들은 유행병을 앓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일하거나 취미생활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건강하다가 가끔씩 앓으며 지냈다. 그럼에도 타인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관용은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삶이었고, 곧 일상의 행복과 직결되었다.
최근의 우리가 이전에 비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행복을 위해 지금 이전으로 돌아가도 될까. 그건 안 된다. 지금은 인류가 처음 맞이하는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시기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면역이 없고 노약자는 위험하다. 최대한 전염을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다만 마스크 안에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현대 보건 위생의 발달은 생각보다 오래지 않았다. 손씻기가 감염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조차 200년도 안 되었다. 사람들은 위생 개념이 없는 시기부터 자유롭게 살아 왔고, 전염병은 때때로 인류를 공격해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점점 전염병의 전파 기전과 위생의 중요성을 알아냈다. 인류는 주변과 거리를 청소하고 손을 씻고 소독을 했으며 병원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유증상자를 격리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인류의 평균 수명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 결과가 우리가 누리던 현대의 일상이다.
지금 우리의 생활은 방역에 있어 거의 최대한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조용히 지내며 타인과의 접촉을 삼가고 있다. 응급실에서 그 사실을 체감한다. 중환자는 여전히 비슷하게 내원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적게 찾아온다. 외상도 줄어들었고 신종 감염병을 제외한 다른 바이러스에도 덜 걸린다. 일상을 보건위생적인 관점에서 계속 제한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더 무탈할 수 있다.
현재로서 이 조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다만 이토록 전염력 강한 바이러스가 당분간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또한 확실한 것은, 건강한 인류의 대다수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 시기가 지나면 새롭게 정의된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마 바이러스와 감염자와 불신을 떠올리면서. 그 일상이 어떤 것일지, 행복과 방역의 접점이 어디일지, 확답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누리던 일상의 행복과 앞으로 찾아올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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