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사투의 현장
29시간 뒤 도착한 문자 ‘음성’

지난 11일 오전 9시 50분 서울 강서구 마곡8구역 드라이브 스루(Drive-thruㆍ차량 이동식) 선별진료소 앞 왕복 3차로 도로는 검사를 받으려는 차들이 몰려 혼잡했다. 고글과 마스크를 쓴 주차요원 세 명이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대기하는 차량에다 역방향에서 유턴을 해 대기줄에 서려는 차, 선별진료소에 들어가는 차들이 뒤엉켰다. 미국 CNN 기자가 체험한 뒤 보도한 경기 고양시 선별진료소의 쾌적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여섯 번째로 줄을 선 뒤 차 안에서 30분을 대기했을 무렵 사이드미러를 보니 뒤에 10대의 차량이 따라 붙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며 이곳엔 하루에 80대 이상의 차량이 찾아온다고 한다.
“신분증 가지고 오셨죠? 혼자 오신 거 맞죠?” 선별진료소에 진입하자 주차요원은 신분증과 동승자부터 파악했다. 감염 확산 우려 탓에 동승자가 있을 경우 신종 코로나 검사가 불가능하다.
선별진료소에 들어가니 왜 밖에서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에서 본 선별진료소는 농구 코트 면적(420㎡, 약 127평)의 4배나 됐지만, 차량들은 여러 줄이 아닌 오직 한 줄로만 이동을 했다. 검사 시간은 1대당 10분 정도 소요돼 일반 선별진료소에 비해 세 배 정도 빨랐지만 앞에 차가 6대만 있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앞에서 대기하는 차량 대수부터 확인했다. 눈에 보이는 차만 12대. 검사를 받으려면 최소 120분을 차 안에서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창문 내려주세요.” 선별진료소에 도착한 지 40분 정도 지났을 때 의료진이 운전석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으로 완전무장한 의료진과 첫 대화를 나눴다. 안내ㆍ접수ㆍ검체 체취ㆍ수납의 총 4단계 절차 중 첫 번째 과정이다.
창문을 절반쯤 내리니 의료진이 손 소독제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진료신청서ㆍ임상조사지ㆍ개인정보이용동의서 등을 건넸다. “펜 있으신가요?” 의료진은 펜이 없다는 말에 자신의 펜을 주며 “나갈 때 꼭 반납해달라”고 했다. 임상조사지에 발열ㆍ기침ㆍ목 아픔 등 신종 코로나 관련 증상이 있는지, 확진자와 접촉한 장소가 있는지 등을 적었다.
5분 정도 서류를 작성하니 다시 초조한 대기 시간. ‘혹시 감염된 건 아닐까’ ‘며칠 전부터 두통 증상이 있던 것 같은데’ 등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농담도 전혀 웃기지 않았다. ‘내가 감염되면 직장이 폐쇄되나’ ‘신종 코로나 사망률이 얼마나 되지’ 같은 기분 나쁜 생각만 꼬리를 물었다. 창문 너머로 살펴본 다른 운전자들도 같은 마음인지 앞 차량 꽁무니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오전 11시 20분쯤 비상상황이 발생했다. 한 식품업체의 중소형 법인 차량으로 의료진 3명이 달려갔다. 30m쯤 떨어져 있어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의료진들과 운전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검사를 받기도 전부터 증상이 심각해진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10분 뒤 의료진들이 해당 차량 뒤로 이동하더니 힘껏 차를 밀기 시작했다. 차가 고장 난 것이었다. 20분쯤 지나자 마스크를 착용한 보험사 직원이 찾아와 보닛을 열고 차를 수리했다.

선별진료소에 도착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난 낮 12시 20분 검사를 받았다.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근육통이 생긴 것 같아요.’ 창문을 열기 전 의료진에게 증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이렇게 요약을 해봤다. 한데 발열 증상이 없다고 기재한 탓인지 체온 검사는 없었고 창문을 내리자마자 바로 검체 체취가 시작됐다. 20㎝ 길이의 면봉을 콧구멍에 집어넣어 10초간 점액을 체취했다. 혀뿌리 쪽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이라 성인이라면 버틸 만한 정도다. 이걸로 검사가 끝났다.
진료 비용은 1만9,130원이 나왔다. 진찰료와 감염예방관리료를 합친 기본 비용이다. 신종 코로나 검사 비용은 국가 지원을 받았다. 감염병 대응지침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이 검사를 원할 경우에는 8만~15만원의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접수 요원으로부터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당부한다는 말을 듣고 선별진료소를 떠났다.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은 확진자가 100명 넘게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콜센터 입주 건물에 전날 갔기 때문이다. 집단감염이 왜 발생했는지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기사 송고를 마친 뒤 기자실로 복귀하니 팀장부터 데스크까지 전화가 쏟아졌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자가격리를 하고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였다.
검사 뒤 29시간이 지난 12일 오후 5시 46분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코로나바이러스-19 검사결과 안내입니다. 검사 결과 ‘음성’. 코로나바이러스-19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글ㆍ사진=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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