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후 아프간에 중국 진출 가능성
헌팅턴의 ‘유교-이슬람 연대’ 현실화할 듯
세계적 미중 경쟁에서 한국의 공간확보 절실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화두에 올라 있던 1993년 여름,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문명충돌론’을 발표했다. 앞으로 국제적 갈등은 문명 간 차이에서 올 것이라면서, 서구문명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으로 ‘유교와 이슬람 문명의 연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중국과 파키스탄, 이란이 비대칭 군사력을 강화하여 서구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가치체계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독특한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당시 ‘역사의 종언’,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에 묻혀 한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사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헌팅턴을 다시 떠올린 것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 결정을 보면서다.
국제정치는 힘의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이 철수하면, 중국이 빈자리를 메우려 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 신장에서 중앙아-아프간-파키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리적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헌팅턴이 말한 ‘유교-이슬람’ 연대가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미국이 아프간을 떠나기로 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9ㆍ11 직후 시작한 출병의 목적은 진작 달성했다. 작전 개시 2개월 만에 알카에다 본거지를 궤멸시켰고,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오사마 빈라덴을 추격하여 10년이 지난 2011년 5월에 사살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탈레반의 재기를 막도록 정부군의 역량을 키우고 민주정치를 정착시키려 한 것이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다시는 아프간이 테러 근거지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전쟁은 18년이나 이어졌고, 미국은 전사 2,500명, 부상 20,000명에 1조달러의 비용을 치렀다.
아프간 철수는 두 가지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보다 ‘중러와의 전략적 경쟁’을 우선키로 한 2017년 국가전략보고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2011년 10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앙아-아프간-파키스탄-인도를 잇는 남북 축선 구상을 제시했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나오기 전이었고, 아프간 안정화가 핵심이었다. 아프간 철수는 이 구상의 백지화를 재확인한다.
미국은 이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서 2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방문은 전략적 함의가 크다. 양국은 군사정보교환을 위한 ‘기본교류협력협정’ 체결과 군사장비ㆍ기술협력 강화에 합의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ㆍ세계적 전략동반자’로 격상키로 했다.
미국이 떠난 아프간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커진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중국이 ‘서진정책’으로 응수한 과정을 생각하면, 미국의 철수는 중국의 기회가 된다. 다만, 쉽지 않은 과제가 있다. 아프간을 안정시키는 작업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초기부터 파키스탄을 통한 인도양 진출에 공을 들였다. 62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CPEC)’을 건설하고, 신장-중앙아-아프간-파키스탄을 잇는 열차도 개통했다. 파키스탄에 대한 영향력이 아프간 안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소련이 실패하고 미국도 손을 든 과제를 중국이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자칫 탈레반 근본주의가 위구르 분리주의와 연결되면, 기회가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 것은 아프간 정부다. 지난 2년의 미국-탈레반 평화협상에 아프간 정부는 참가하지 못했다. 탈레반이 완강하게 반대했고, 떠나기로 마음을 정한 미국은 그것을 꺾지 못했다. 아프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2011~14년 우리도 지방재건팀(PRT)을 보내 평화정착을 지원했다. 소련 침공 이후 40년을 전쟁 속에 지새온 아프간이 하루빨리 안정을 찾기 바라지만, 전도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인도양에서 동북아까지, 미중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그것이 몰아오는 위험과 함께 기회를 보고, 운신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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