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법정의 양 날개, 배석판사의 삶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스틸컷. JTBC 제공

“점심은 물론 저녁도 매일 부장님과 먹었어요. 그러다 같이 야근하러 가거나 아님 2차로 노래방에 갔죠. 예전엔 토요일도 일했으니까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같이 등산가고… ”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나 때는…’ 회고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함께 지내다 보니 합의부 세 판사는 생활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두 끼를 함께 먹으며 사건 검토는 물론 자연스레 각자의 사생활까지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법원 합의부 공동체 문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밥까지 함께 먹어야 하는 관행에 대한 반발이 시발점이 됐다. 업무 이야기까진 받아들이겠지만, 식사 중 대화가 이내 사생활 참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문제였다. 혼자 밥을 먹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부장들이 누군가 챙겨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배석들은 “내가 왜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냐”는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식사문화는 2016년 사법문화개선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왔을 정도로 사법부 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요즘은 주 두서 차례 정도 같이 먹는 요일을 정하는 게 대세가 됐다. 2월 말 재판부가 정해지면 같이 ‘밥 먹는 요일’부터 정한다. 보통 재판이 없는 월요일엔 부장판사도 동기들이나 친한 부장판사끼리 ‘밥조’를 꾸려 따로 먹는다. 함께 먹는 날엔 메뉴 발제가 부담스러울까 봐 알아서 식당 예약을 하는 부장들도 생겼다. 지방의 한 배석판사는 “우배석이 총무를 맡아 식당예약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센스 있는’ 부장님들은 먼저 식당을 잡아주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야근은 여전히 잦지만 저녁은 따로 먹는 분위기다. 저녁까지 같이 먹자고 하는 부장은 ‘생활형 벙커’로 낙인 찍힌다. ‘벙커’는 배석을 괴롭히는 부장판사를 가리키는 법원 내 은어다.

여전히 ‘공동체 문화’를 고수하는 부장들도 있다. 부장이 ‘업무형 벙커’인 경우 토요일에도 합의를 한다. 서울의 한 배석판사는 “부장님이 불러서 토요일 밤에 출근한 동료가 있다”며 “부장님이 합의하자는데 안 간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휴정기에 합의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런 문화를 좋아하는 배석도 있긴 한데 나는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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