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답지한 ‘평등마스크’에 감동
[#힘내라 대구_경북]
“상자 안에는 종류가 각기 다른 마스크들이 한 가득 들어있었죠. 마스크가 대량구매가 안되니 두 장, 세 장씩 모아 보내주신 겁니다. 각자의 마음을 표현한 마스크들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대구 최대 산업단지인 성서공단에 자리잡은 성서이주노동자센터 활동가 박기홍씨는 1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6일 센터로 배달된 상자를 열어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성서이주노동자센터는 5만여명 성서공단 노동자 중 약 10%를 차지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5,000여명의 쉼터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중국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성서공단 이주노동자 사회는 신종 코로나 국면에 잔뜩 위축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구에서만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던 지난 달 27일. 박씨와 동료들은 성서공단의 이주노동자 공동쉼터와 기숙사를 돌며 마스크를 급히 배포했다. 사업장들도 마스크를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개인 방역은 무방비였다. 센터 비축분인 마스크 200장은 나흘 만에 동이 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박씨는 전국에 마스크 긴급 후원을 요청했다.
3월 첫째 주부터 전국에서 보낸 마스크와 방역물품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방인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6일 서울 도봉구의 염광교회에서는 KF80이상 보건용 마스크 1,101장과 손 세정제 한 박스, 후원금 100만원을 보내왔다. 박스 안에는 신자들이 제각기 몇 장씩 모아 보내준 서로 다른 상표의 마스크들이 가득했다. 박씨는 “자신이 쓰려고 사 두었다가 보내준 것, 포장지에 붙어있던 가격표를 일부러 떼어낸 것, 면 마스크에 정전기 필터를 붙여 직접 만든 것 등 모두가 달랐다”라며 “힘내라는 내용의 메시지들을 써서 넣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416연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단체,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대구가톨릭공동선연대, 대구YMCA, 대구지역 의사단체들에서도 마스크를 보내왔다. 대전의 소셜벤처 디모스는 세 차례에 걸쳐 손 세정제를 보냈고 서울의 한 독지가는 후원금 30만원을 보냈다. 12일까지 도착한 마스크만 4,600여장이다.
센터는 지금까지 약 2,000장의 마스크를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 배포했다. 마스크 5부제 시행 후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마스크 구매가 힘들어져 센터 배포분이 이들이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스크다. 외국인은 이제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면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동시에 제시해야 하는데 많은 이주노동자가 미등록 상태이거나 비자 여건상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다.
박씨는 “대구에서는 주민센터를 통해 마스크가 무료로 배포되곤 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통로가 없어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방역정보가 한국어로만 제공되면서 정보부재로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과잉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문제다.
센터는 15일 대대적인 ‘평등 마스크’ 배포 행사를 열 예정이다. 박씨는 “재난 상황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받아야 하는 마스크를 전국에서 모아주신 마음을 통해 배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