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후원그룹 ‘엔젤클럽’
지난해 대구는 축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만년 하위 팀이던 대구 연고 시민축구단 대구FC가 홈 구장을 도심에 새로 마련한 DGB대구은행파크(일명 ‘대팍’)로 옮긴 뒤, K리그1(1부 리그) 4위까지 뛰어오르면서다. 홈 구장 매진만 무려 9차례. 대구FC는 대구 축구팬을 넘어 지역민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대구 도심의 이 경기장에선 철제 관중석 바닥을 구르는 ‘쿵 쿵, 골!’ 응원 열기가 다시 대구인들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K리그 개막은 미뤄졌고, 경기장은 물론 도심 전체가 텅 비었다. 지난해까지 대구FC 흥행 열기를 부채질 한 구단 후원그룹 ‘엔젤클럽’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엔젤클럽 회원들은 “시즌 준비를 잠시 접고 지역민과 의료진을 먼저 응원하자”고 뜻을 모았다. 이호경 엔젤클럽 회장은 12일 본보와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지역사회 전체가 가라앉자 모임의 ‘본분’을 먼저 떠올렸다”며 “실의에 빠진 시민들과 날로 지쳐갈 의료진, 봉사자들을 먼저 응원하자는 결론이 내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구FC를 통해 지역사랑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2016년 대구ㆍ경북지역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엔젤클럽은 지난해까지 약 1,7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기업인 출신인 이 회장은 “지금 대구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지역사회 아픔을 치유하면서 도시를 활기차게 만드는 게 스포츠의 순기능인 만큼, 회원들이 우리라도 발 벗고 나서자는 의지가 컸다”고 했다.
엔젤클럽은 지난달 27일부터 대구 도심 곳곳에 ‘힘내라! 대구경북!’ ‘#이겨내자_대구’ 등 응원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 100여장을 내걸며 시민들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 같은 노력은 축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국 축구팬들이 대구경북 지역을 응원하는 ‘대동단결’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엔젤클럽 회원사인 중견기업 금복주에서 대구와 경북에 각각 10억원씩 총 20억원을, 교촌에프앤비에서도 2억원을 기부하는 등 많은 회원 및 회원사들이 거액 후원에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료진을 위해 아낌없는 후원을 실천한 회원이 많았다. 선서인더가든을 운영하는 신승호 회원은 지난달 27일부터 대구지역 의료진에게 매일 도시락 155인분, 면역성에 특성화된 자체 제작 우유 500병씩 제공했다. 누적후원 수량만 벌써 도시락 2,300인분, 우유 7,000병을 넘겼다.
축구를 좋아하는 30대 청년기업가도 나섰다. 양말제조업체 홀삭스를 운영하는 박진현 회원은 지난 3일 대구시청을 통해 의료진에 전달해달라며 양말 3,300켤레를 선뜻 기부했다. 박씨는 본보와 통화에서 “우리회사를 홍보할 때 ‘대구기업’이란 걸 강조해 왔기에 지역으로부터 덕을 보며 회사를 키워 온 셈”이라며 “이 기회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대구FC가 시민들의 활력이 됐는데, 하루빨리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돼 많은 시민들이 한껏 소리지를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사실 엔젤클럽도 대구FC가 정말 어려울 때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우리는 위안과 치유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K리그가 개막 한다면 ‘대팍’ 분위기를 제대로 띄워 치유에 힘을 보태겠다”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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