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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ㆍ관광업종 코로나發 한계상황 “환란 때보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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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ㆍ관광업종 코로나發 한계상황 “환란 때보다 심각”

입력
2020.03.13 04:30
수정
2020.03.13 08:4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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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항공사 직원 36% 휴직… 여행사 100여곳 폐업… 대량실업 우려

12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한 상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한 상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국내 간판 유통기업인 A그룹은 요즘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기예금 해지는 물론이고 언제든지 인출 가능한 요구불예금 등을 활용하면서 현금 비축에 올인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시장 상황이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다다랐다는 진단에서다. A그룹 관계자는 “지금 상태가 1,2개월만 지속된다면 국내에도 줄도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파산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앞다퉈 현금 확보에 달려들면서 돈줄은 갈수록 더 말라갈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코로나19가 국내 산업 생태계를 마비시키고 있다. 특히 항공과 호텔, 면세점, 관광 등을 포함해 코로나19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된 업종은 이미 한계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실탄 축적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소비자신뢰지수(CCI)가 전월(100.0) 대비 0.4포인트 하락한 99.6로 나타났다. 자료 집계가 완료된 OECD 25개국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이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소비자들이 향후 경기와 고용동향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OECD 측은 “소비자들이 실제로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려고 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코로나19 탓에 소비층이 외부 활동을 자제한 데다, 확진자가 다녀간 마트와 대형 쇼핑몰, 백화점, 면세점, 호텔 등이 폐쇄되면서 움츠러 든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발 실직과 휴업 사태도 줄을 잇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불가피한 사유로 6개월 이내 휴직하는 근로자인 일시휴직자가 전년 동기 대비 14만2000명(29.8%)이나 급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겪던 2011년 9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하늘길이 닫힌 항공업은 개점휴업을 넘어 도산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전체 여객 노선 124개 중 89개가 운휴에 들어가면서 보유 여객기 145대 중 100여대가 놀고 있다. 지난달 인천공항의 국제 여객 수송객은 전년 동기 대비 41.5% 감소했고, 항공기 탑승률 역시 25.6% 줄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 당시를 넘어선 수준이다. 항공사별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여객수가 각각 32.8%, 37.2% 감소했고, 저가항공(LCC) 수송객수는 46.7%나 급감했다. 항공업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국내 7개 항공사의 유·무급 휴직자 수는 전체직원(2만1,000여명)의 35.7%인 7,500명여명에 이른다. 항공업계에선 유·무급 휴직과 희망퇴직 외에도 임금 삭감 및 반납, 단축근무 등은 시행 중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회사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IMF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여행업계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해외여행객의 국내여행 취소율이 지난달 50%에 육박하면서 서울 시내 4성급 이하 중소호텔들은 줄줄이 잠정 휴업에 돌입했다. 5성급 대형호텔들도 간신히 잠정 휴업은 면했지만 레스토랑이나 뷔페 등을 임시 휴업하거나 시간을 단축해 운영하는 등 초비상 태세다. 중소 여행사들은 아예 폐업처리 수순에 들어갔다. 한국여행업협회(KATA)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1월말 이후 한달 여간 100곳 이상의 여행사가 폐업절차를 밟았다. 업계 1, 2위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조차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다. 한 중소 여행사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살아 남는 중소 여행사는 단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주변엔 아예 업종 전환에 나선 동료들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은 면세점 업계에도 떨어졌다. 롯데면세점은 12일부터 김포공항점을 휴점했다. 시내면세점은 롯데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이미 단축영업을 시행 중이다. 대기업 면세점 소속 직원들은 그나마 무급휴가를 쓰며 고용을 보장받고 있지만, 협력업체들의 판매 직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쌓여가는 재고 물량도 폭탄이다. 면세점 물품은 소비세와 관세 등을 면제받아 입고되기 때문에 공항 같은 보세구역 밖에선 판매할 수 없다. 매장 내에서 팔리지 않으면 업체가 고스란히 재고를 떠안아야 한다. 공항 이용객 급감이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롯데면세점은 이미 확보한 봄 신상품을 비롯해 현재 물류센터에 쌓인 재고가 최소 2조원어치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내년으로 넘겨도 팔리지 않는 상품들은 소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텔업계 또한 빨간불이 들어온 건 마찬가지다. 서울시내 호텔 투숙율은 10% 미만까지 떨어졌다. 전 직원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들어간 호텔이 태반이다. 계약직이 많은 호텔 특성상 대규모 해직도 우려된다. 5성급호텔에서 근무하는 B씨는 “회사에선 사무실에는 1~2명만 남으라며 무급휴가나 연차휴가를 강요하는 분위기”라며 “정규직을 앞둔 계약직원들은 혼란스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3성급 호텔에 근무하는 C씨는 “최근 상황이 악화되면서 일부 계약직들은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정책을 알아보고 있다”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코로나19에 취약점을 드러낸 업종별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 여파가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임금 손실을 입은 근로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심리 회복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는 각 업계의 피해현황을 분석한 후,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규제완화와 함께 금융거래상 불이익 면제, 금융보증여력 확대 등의 생존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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