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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ㆍ’확진자’ 단어, 환자 급증하자 욕설과 함께 사용됐다

입력
2020.03.13 18:00
수정
2020.03.13 19: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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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본 한국인] ‘코로나 분노’ 어디로 향했고 그 영향은…

신천지 교회에서 콜센터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스크만으로는 불안을 모두 떨칠 수 없고, 생업은 힘겹다. 그렇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러스는 물론, 이 상황에 대한 화를 참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 분노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의 분노는 무엇을 향했으며, 그 분노는 현재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트위터에 기록된 데이터는 그 분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전 연령, 전 계층이 골고루 사용하지는 않지만, 의견이나 감정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집단적 분노는 그런 환경에서 쉽게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분석을 위해 1월 20일부터 3월 1일 사이에 작성된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트윗 약 676만 건(닐슨 코리아 제공)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집단적 분노의 대상과 그것의 시간적 변화를 측정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자동화된 언어 처리를 통해 각 트윗으로부터 단어를 추출했고,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가 하나의 트윗에 함께 출현하는지 분석했다. 전체 트윗 중 가장 많이 출현한 명사 100건을 워드 클라우드로 시각화해 보니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은 쉽게 짐작할 만한 것들이다(글자 크기가 클수록 많이 등장했다는 의미).

‘신천지’나 ‘우한’ 같은 단어가 그렇다. 초점을 분노로 좁혀보자. 주로 무엇이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 분노를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번 분석에선 욕설을 찾아봤다.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는 욕설, ‘×발’ ‘×끼’ ‘개××’는 주로 분노를 표출할 때 사용된다. 만약 같은 트위터 게시글에서 이런 욕설과 함께 쓰인 단어의 목록을 찾는다면, 트위터에서 분노의 대상이 된 것들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트위터 게시글처럼 짧은 글 안에서 욕설과 함께 쓰인 단어는, 많은 경우 그 욕설의 대상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욕설과 같은 트윗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우한’ ‘폐렴’ ‘신천지’ ‘한국’ ‘감염’ 순이다.

상위 10개 단어 중‘폐렴’이나 ‘감염’같이 자명한 단어를 제외하면 세 가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우한’ ‘박쥐’ ‘신천지’처럼, 감염의 중심이라 지목되곤 하는 대상들이 있다. 두 번째로 ‘한국’ ‘정부’처럼 방역 정책 책임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확진자’가 있다. ‘확진자’ 역시 욕설과 함께 출현하는 경우가 많고, 분노 감정과 여러 경로로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별로는 어떨까. 한국에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3월 1일까지 7일 간격으로 시기를 나눠, 각 주별로 세 개의 욕설과 함께 등장하는 상위 10개 단어를 찾아봤다. 2월 중순 이전까지는 주로 중국과 관련된 ‘우한’과 같은 단어가 욕설과 함께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7~23일 주간에는 ‘신천지’와 ‘확진자’가 갑자기 상위 단어로 출현한다. 이 시기는 확진 환자 증가 숫자가 본격적으로 두 자리 혹은 세 자리로 올라선 시기이다. 24일 이후에는 특히 ‘신천지’와 ‘이만희’라는 단어가 욕설과 함께 사용된다.

이런 대상들에 대한 분노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냈을까. 중국 ‘우한’이나 ‘정부’라는 단어보다 ‘확진자’와 ‘신천지’에 대한 지나친 분노는 방역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확진자에 대한 분노가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확진 환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는 확진자가 될 경우 나에게 쏟아질 사회적 손가락질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나도 모르게 확진 환자가 되었는데, 동선이 공개되고 무책임하다고 비난 받는 상황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트위터의 분석 결과는 그 공포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나를 번호로 지칭한 기사와 내 동선이 부정적 코멘트와 함께 무수히 리트윗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이런 방향의 분노가 커질수록, 두려움은 공포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포가 강해지면, 개인 차원에서는 검사나 진료를 회피하려는 생각이 강해진다. 감염 사실이 알려졌을 때 받게 되는 비난과 피해가 두려워 방역 시스템을 피해 숨으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도 2월 17~23일 기간처럼 많은 수가 환자가 포착되기 시작한 시점에 발생한다면, 공중 보건 관점에서는 큰 비극이다. 숨은 사람 중에 감염자가 있을 경우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특히 감염자가 방역 체계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감염자를 향한 지나친 분노는, 이들을 방역 체계 밖으로 몰아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의 집단적 분노가 방향을 잘못 잡을 경우,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 방해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만에 하나 자신이 감염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의료적, 경제적, 심리적 지지를 해줄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이다. 그 지지에 대한 믿음이 형성돼야 바이러스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의 공동체는 더 넓고 단단해져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회적 관계만 제약되면 차라리 다행이라 여겨야 할 만큼, 많은 사람이 생명과 생업을 위협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감염병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바이러스 차단 절차와 방법뿐 아니라, 집단적 분노와 공포를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훈련해야 한다. 분노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다. 다만 분노의 대상과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 잘못된 분노는 오히려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된다.

조원광(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일보-포스텍 데이터사이언스포럼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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