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가팔라지자 일부 지방정부가 봉쇄령을 발동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방어막으로 여겨졌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대책 발표 기자회견은 돌연 취소됐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의도치 않은 미국발(發) 글로벌 공포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州)지사는 10일(현지시간) 웨스트체스터카운티 뉴로셸 지역 일부를 봉쇄했다. 뉴욕주 두 번째 확진자인 50대 남성이 거주하는 이 곳에서 가족과 이웃 등 무려 108명이 감염된 데 따른 조치다. 출입 자체를 막지는 않았지만 학교ㆍ종교시설ㆍ공공시설 등을 2주간 폐쇄하기로 하고 주방위군까지 투입했다. 도시 기능 자체를 틀어막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나 전국을 ‘레드존’으로 지정한 이탈리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첫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
사실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악화일로다. 존스홉킨스대 통계에 따르면 이날 현재 누적 확진자는 1,000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도 31명으로 늘었다. 특히 하루 새 확진자가 260명 이상 폭증했고, 감염자 발생 지역도 수도 워싱턴과 37개 주로 확대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이 거센 점을 감안하면 ‘미국 내 팬데믹(대확산)’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미 9개 주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황이라 확진자가 최소 137명인 뉴욕주의 이번 봉쇄 조치가 다른 지방정부로도 번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 내 이동 제한이 출ㆍ입국으로까지 확대됨으로써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경제 대책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칠 것이란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이틀 전 ‘블랙 먼데이’를 경험한 주요국 주식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급여세 인하와 유급 병가 시행 등의 대책을 예고하자 하루만에 진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공화당의 지지조차 얻지 못하면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예정된 기자회견을 취소했고, 이날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또 다시 추락했다.
물론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가 상승을 최대 치적으로 꼽는 만큼 경기 부양을 위한 우회로를 찾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내세워 급여세 감면 추진 등의 의지를 거듭 밝혔고, 트위터에선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에 추가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미 재무부가 연방소득세 신고 기한 연장 방침을 밝힌 건 행정부 차원의 가능한 조치라도 시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기는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마크 잰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이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65%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이 세계 경제를 떠받들 만큼의 여력을 갖기가 어려울 것임을 보여준다. 실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이날 기준금리를 0.75%에서 0.25%로 대폭 낮춘 것을 두고 미국발 불황에 대비한 선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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