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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제주 현대사 비극 다룬 원로 소설가 현길언 하늘나라로

입력
2020.03.12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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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길언, 한국일보
소설가 현길언, 한국일보

고향 제주에 아로새겨진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지식인의 시대적 책임과 이념의 허구성을 지적해온 원로 소설가 현길언씨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1940년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주사범학교를 거쳐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성균관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현대문학’에 단편 ‘성 무너지는 소리’ ‘급장 선거’가 추천돼 등단한 이후 제주도라는 향토적 세계와 기독교적 가치관을 토대로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제주도라는 지방적 삶의 특수성을 통해 분단된 민족의 보편적 비극을 형상화한 ‘용마의 꿈’(1984), 이념 싸움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닳아지는 세월’(1987) 등 40여년간 12권의 소설집과 8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혼란기, 한국전쟁 시기를 겪는 제주 소년 세철이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 3부작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전쟁놀이’ ‘못자국’ 시리즈를 통해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갔다.

16년간 제주대와 한양대 교수로 일하며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체’ ‘한국현대소설론’ 등 다수의 소설 이론서도 썼다. ‘제주문화론’ ‘제주설화와 주변부 사람들의 생존양식’ 등 고향 제주에 대한 다양한 책도 써냈다. 2005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계간지 ‘본질과 현상’을 직접 펴내며 자신의 신작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면에 실은 ‘과거사 청산과 역사 만들기-제주 4ㆍ3사건 진상보고서를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제주 4ㆍ3은 의로운 저항이 아니라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고 주장, 피해자 유족회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신간 ‘언어 왜곡설’을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 창작열을 불태워 왔으나 수개월 전 암이 발병, 치료를 받아왔다. 한국학연구소장, 평화의문화연구소장, 기독교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녹원문학상(1985) 현대문학상(1990) 대한민국문학상(1992) 김준성문학상(2011)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분(2019)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은 13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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