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하마터면 정은경은 없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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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하마터면 정은경은 없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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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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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9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및 확진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매일 오후 2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진행되는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며 자연스럽게 브리핑을 담당하는 정은경 본부장도 덩달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머리 감을 시간도 아까워 뒷머리를 쇼트커트로 짧게 자르고 끼니도 도시락과 밥차로 간단히 챙기며 24시간 긴급상황실(EOC)을 지키고 있다 보니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얼굴과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국민들의 염려를 자아내고 있다. 본부장의 성실하고도 차분하며 꼼꼼한 업무스타일과 코로나19 방역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질본 직원들의 고생이 알려지면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데도 이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의 대유행에 맞서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정 본부장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가 한때 공직에서 물러날 뻔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년 전 질병예방센터장으로 일하던 그는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병 차단의 일선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사태가 종식된 후 감사원에서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정직 처분을 권고해 공직 인생에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평소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감염병 예방이라는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는 그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에 인사혁신처장이던 필자는 당시 신임 질병관리본부장과 함께 징계 수위가 감면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고심했던 바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정직은 이제 그만두고 공직을 떠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중징계라 당시에도 그의 전문성과 성실성을 아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다행히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심의위원회가 당초의 권고안보다 낮은 감봉 1개월 경징계 처분을 확정해 질병관리본부에 남을 수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1급을 거치지 않고 차관급인 본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당시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미숙한 자세에 국민적 공분이 높아 관계 공무원 다수가 감사원 감사를 받아 징계 심의의 대상이 되어 공직을 떠나기도 했다. 정 본부장의 계속 근무가 가능하게 됐던 것은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공무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공복이라는 자세로 방역 업무를 수행한 것이 공직사회 안팎에서 인정받았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윗선의 눈치를 봤다거나 특정 정파의 유불리를 따져가며 일했다면 중징계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무원 인사의 기본이 이런 것이다. 인사권자가 자기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람 승진시키는 게 아니라 때론 미련해 보일지라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키워주는 것이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일을 해야 할 때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티 나지 않게 자신의 책무를 묵묵히 감당하는 이들을 가려내고 힘을 실어주는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권이 이러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국민 전체를 보고 일하는 공무원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국민이 직접 나서서 보호해줄 책무도 있다.

이제 곧 코로나19 사태도 변곡점을 맞아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마 사후약방문과 논공, 또 다른 문제점을 따져보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에도 우리나라의 치사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유지되고 국가시스템이 마비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과 차분한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고 바이러스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최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일하는 여러 정은경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내라, 정은경! 힘내라, 질병관리본부! 그리고 자랑스러운 공무원. 그대들을 믿습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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