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와중에 교통단속 실적 경쟁 독려한 대구경찰청’
“장발장 잡는 자베르 형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경찰들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구경찰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선 경찰들에게 교통단속 실적을 독려했다는 기사가 나간 뒤였다. 지역이 코로나19라는 불구덩이에 던져진 상황에서 지방청으로부터 내려오는 단속실적 압박은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예방과 단속은 경찰의 당연한 업무다. 문제는 경찰이 과도한 단속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가 대구 지역에 코로나19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뉴스 보도로 발표되는 확진자 숫자에 너나 할 것 없이 무릎이 저절로 꺾이는 듯한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도시는 80년대로 돌아갔다. 도로는 텅 비었고,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통에 해가 지면 거리는 정적까지 흘렀다.
그 황망한 와중에 시절을 잊고 변함없이 씩씩했던 이들은 학교 안 간다고 신이 난 초등생들과 대구경찰청뿐이었다. 경찰서들은 유례없는 단속 실적 압박에 시달리면서 매일 아침 대구경찰청에 실적을 보고했다. 일선 경찰은 말 그대로 철면을 쓴 돌격대가 되어야 했다. 응원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대구경찰청장의 관심 사안’이라는 명목 아래 힘든 시민들을 감시하고 질책해야 한다는 자괴감에 경찰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경찰도 시민인데, 이건 콩깍지로 콩을 삶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푸념했다.
안팎의 비난이 비등하자 대구경찰청은 28일 “시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은 뒤 다음날부터 보고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4일에는 무인단속 실적을 경찰서별로 취합해서 하달했다는 글이 내부망에 올랐다. 보고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실적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무언의 강요나 다름없었다.
기사를 접한 한 퇴직 경찰은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국가적 난국을 헤쳐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시민의식이 한껏 고양되어 있다”면서 “이런 시기엔 단순한 캠페인만으로도 교통위반 고지서 1만장보다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퇴직 경찰관의 말마따나 대구경북은 관과 시민 누구 할 것 없이 하나로 똘똘 뭉쳐 국난을 극복하자는 결의에 차 있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대통령에게 눈물을 흘리며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권영진 시장은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전염병과 싸우느라 얼굴이 퉁퉁 부었다.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코로나19를 잡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데 대구경찰청만은 늘어난 단속 실적 통계를 두고 흡족해하고 있다.
법 집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경찰의 엄연한 임무다. 다만, 시국을 생각할 때 과도한 단속은 너무 억지스럽다.
대구는 현재 어느 지역보다 힘든 상황이고, 그만큼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엄중한 마당에, 배 아파 똥 누는 아이 주저앉히겠단 놀부 심보도 아니고, 아득바득 범칙금 고지서를 날리는 것만이 준법정신을 확립시키는 해법이라고 고집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지구별 여행자인가.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