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변함이 없다. 갈 때마다 식당과 가게가 그대로 있고, 백화점과 서점이 수백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옥스퍼드 시의 오래된 골목과 건물도 지금과 똑같다. 익숙한 모습이 아늑한 느낌을 준다. 길을 가다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공원에서는 바라고 꿈꾸었던 삶을 볼 수도 있다. 아름드리 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는 남자, 잔디밭에 둘러앉아 재잘재잘 떠드는 여자 아이들, 담요 위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차를 마시는 가족들.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삶이 참 쉽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갔던 언덕에 올랐다. 초록의 풀로만 가득한 광활한 들판을 내려다본다.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아~”하고 탄성을 지르니 다 큰 딸이 따라하며 “옛날에는 내가 왜 감탄을 안 했지?” 한다.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운 언덕에 서니, 세찬 바람이 바지를 흔들고 모자를 벗기려 한다. 딸이 아빠와 함께 연을 날리던 날과 바람이 연줄 잡은 손을 세게 흔들던 느낌을 기억한다. 멀리서 아빠와 아이가 연을 날리고 있다. 그때 우리가 했던 그대로.
영국의 시골에 가면 삶이 보인다. 집집마다 정원이 있고, 사람들은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산다. 손수 기른 채소의 단맛을 음미하며 땅으로부터 자연과 식물을 배운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으면서도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라 말한다.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진정한 여유를 누린다. 정원이 자신만의 낙원인 것이다.
작은 집에서 작은 냉장고를 쓰며 산다. 창문을 열어두고 문을 잠그지 않고 사는 마을에서는 마음이 느슨하다. 방충망이 없어 집에는 이름 모를 벌레가 많고, 정원에는 이름 모를 새가 많다. 세탁기만한 냉장고는 가득 채워놓아도 금세 텅 비고, 방부제 없는 음식은 유통기한이 짧아 자주 장에 가게 한다. 거미와 벌이 드나드는 집 덕분에 새소리가 아침잠을 깨우고, 작은 냉장고 덕분에 신선한 음식을 먹는다. 절제로부터 얻는 삶의 질이다.
천천히 먹고 느긋하게 마시면서 산다. 시내에 갈 때는 산책하듯 걸어서 가고, 뛰는 것은 운동할 때뿐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답게 광고에는 사람대신 동물들이 등장하고, 가게 문 앞에는 개가 마실 물그릇이 놓여있다. 줄을 풀어준 개가 지팡이를 짚고 걷는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며, 마트 앞에 묶어둔 개가 가만히 주인을 기다린다. 느리게 날아다니는 파리와 벌은 둔해서 쫒아내기 쉽다고 하면 믿겠는가.
지붕을 활짝 연 구식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며 끝도 없는 길을 두 발로 저어간다. 템즈강 위에 좁고 긴 배를 띄우고 느린 휴가를 보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오리에게 빵을 던져주고, 아빠와 아이가 낚시를 한다. 따사로운 햇볕에 앉아 미지근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해한다. 늘 다음 볼거리를 찾아 여행하는 우리가 “What’s next?”라고 묻는다면, “Nothing”이라고 대답할 것 같은 사람들이다.
“Life is not about how fast you run, or how high you climb, but how well you bounce!” (인생이란 얼마나 빨리 뛰는가도 아니고,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도 아니다. 앞으로 나가다가 뒤처졌을 때, 올라가다가 고꾸라졌을 때, 공이 그렇듯 얼마나 다시 잘 튀어 오르는가이다.)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하다. 바꾸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행복할 줄 안다. 인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게다. ‘런던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런던너들은 런던에 살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곳이 직장이 있는 곳일 뿐이기 때문이다. ‘런던은 런던이지 영국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곳이 생활하는 곳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활과 삶을 구별하고 삶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나의 하루하루가 생활로만 채워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 마음에 진정한 만족감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인생이 중요하다면 그 속에 삶이 들어 있는지 한 번쯤 물어봐야 한다.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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