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유지선 1983년부터 깨졌지만 정책효과 거의 없어
아마존 성공비법은 인구변화 정확히 읽어낸 것이 핵심
가장 빠른 고령화 국가 한국, 정부ㆍ기업 새 룰 모색해야
<1> 인구충격을 인구혁명으로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바야흐로 ‘인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 인구감소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장기화되면서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주저앉은 결과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식어는 부정적이다. 덜 낳고 더 늙어 그간 유지됐던 지속가능성이 훼손된다는 논리다. 위협과 충격을 넘어 소멸과 붕괴라는 단어마저 따라붙고 있다. 이대로 가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는 말까지 나온다.
관련 통계들은 이 같은 염려가 기우(杞憂)일 수 없음을 뒷받침한다. 2019년 0.92명의 출산율(잠정)은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증유’의 영역에 한국사회가 최초로 들어섰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조차 한국을 둘러봐야 인구문제의 진면목에 다가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인구문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인구변화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됐다. 인구유지선(출산율 2.1명)이 깨진 것이 1983년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신호가 40년간 이어진 셈이다.
문제는 해법으로 내놓은 정책들 가운데 제대로 효과를 본 것이 없다는 점이다. 여러 정권에 걸쳐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졌지만 답답할 만큼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었다. 거액의 예산을 투여했지만 상황이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돈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차라리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렇다고 미온적인 정부대응만 탓하고 있을 수도 없다. 이미 때를 놓치기도 했고, 이제는 별다른 수단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긴 안목으로 사회구조 전체를 바꿔야 먹혀들 수 있는 이슈가 됐다고 봐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낮은 정책과제가 돼버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책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들의 날선 갈등이 뒤따른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인구 관련 대책이 점차 뒤로 밀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다.
요약하면 인구문제는 그 자체로 ‘난제’가 됐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정해진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인구변화에 맞는 뉴노멀(New Normalㆍ새로운 표준)식 패러다임의 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악재를 호재로 재검토하고 재구성한다면 위기는 얼마든지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인류역사는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왔다.
인구감소가 문제라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전대미문의 낯선 변화’라는 말이 좀 더 정확한 의미일 수 있다. 낯선 변화는 새로운 룰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생산과 소비의 핵심 주체인 인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진화전략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인구충격의 파고를 인구혁명의 계기로 전환시킬 다각적인 기회타진이 시급하다. 인구변화가 위험은커녕 착각일 수 있음을 증명해낼 새로운 길의 모색이다. 정밀한 상황 판단과 예민한 진단과 대응에서 출발해야 한다.
◇혁신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하나는 인구변화가 부담인 건 모두에게 해당하지만 더 좌불안석인 건 기업ㆍ시장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부는 그나마 여유롭다. 인구가 줄기는 해도 계속 태어나기는 하고, 세금은 거둬지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들은 밀어줄 뒷배도, 의지할 언덕도 없다. 고객이 떠나면 시장은 닫히고 기업은 망한다. 정부처럼 한가롭게(?) 미루거나 피할 수 없다.
기업 영역에서 이뤄지는 혁신 사례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존과 영속성이 필수인 기업들에게 인구변화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필수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전략수립의 밑바닥에 깔아야 할 게 인구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구변화→고객변화→시장변화→사업변화’에 대한 연구가 한창 이뤄지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성공적인 혁신 사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책이 엇박자를 내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도 살아남은 시장과 기업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꾸준히 인구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선제대응에 나선 곳들이다. 사실 시장에서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 기업이라면 인구변화에 정통할 수밖에 없다. 사업모델이 승승장구한다는 것은 ‘친고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이 재편되고, 시장이 변모하는 촉발점은 고객변화에서 시작되게 마련이다. 예전처럼 내놨는데 안 팔리면 고객이 변한 결과다. 양(量)으로도 질(質)로도 욕구가 변했는데, 과거만 고집하면 팔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구변화는 오히려 단군 이래의 최대기회가 될 수 있다. 10년 후 뭘 먹고 살지 고민인 경영자라면 불안할지언정 절호의 사업찬스로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소리소문 없이 거대한 인구변화에 올라탈 실험에 이미 착수했다. 그들은 인구변화를 반짝하는 단기 트렌드나 근(近)미래적 이슈로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또 올지 모를 혁명적인 사업기회로 봤다.
◇인구변화, 단군 이래 최대기회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인구위기를 사업 기회로 전환해 거대 공룡기업 반열에 오른 경우다. 특유의 IT기술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 시각이 많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인구변화를 정확히 읽어낸 게 주효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아마존은 상시적으로 고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 기업답게 전체 단위의 고객 변화를 실시간 체크하며 시장 전략을 내재화한다. 그 결과로 유통채널을 넘어 제조와 판매공간까지 넘나들며 달라진 고객욕구를 반영한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유통 채널을 넘어 자체브랜드(PL, Private Label) 상품을 70개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큰 장은 섰고, 벨은 울렸다. 인구변화가 만들 새로운 미래는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혁신이 요구된다. 더 이상 사양산업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신고객이나 신시장으로 대체될 뿐이다. 유아 기저귀는 불황이라도 어른 기저귀는 호황일 수 있다. 표준적인 대형 유통업체들은 힘들어지더라도 차별적인 골목점포에는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 들면 팔리는 시절은 지나갔다. 시장의 무게추가 고객 우위로 전환된 것이다.
실제로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객들의 요구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청년층은 보수화되고 있는 반면 노인층은 활발해진다. 서울아파트 가격이 치솟은 것은 팔아야 할 중고령층이 새로운 구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적인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고학력ㆍ다양가치 소비자가 대량으로 등장함에 따라 선호하는 재화부터 구매 패턴까지 변화하고 있다.
이제 인구문제라는 변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한참 넘어섰다.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은 모든 이슈가 인구로 투영될 것으로 봐도 지나친 전망은 아닐 것이다. 갈등이든 해법이든 그 원류에는 인구가 있게 될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방치하거나 포기해선 곤란하다. 정부나 기업이나, 지속가능이 목표인 조직, 집단이라면 숙명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넘어야 할 산이면 미룰 필요는 없다. 꾸준하되 확실하게, 차분하되 담대하게 응전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길이 완전히 닫히진 않았다. 인구갈등을 풀며 열어젖힐 공간은 분명히 있다. 필요한 건 의지와 실천이다. 위기를 기회로 품는 에너지라면, 인구충격은 인구혁명으로 전환될 수 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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