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15년 취재… “입시교육으로 피동적인 청년들 꼬임에 무력”
“청년들이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에 빠지는 건 도박 중독과 비슷합니다. 모든 게 리셋(초기화)되는 심판의 날, 지배계급 14만4,000명 안에 포함되기만 하면 그때까지 터널을 지나오느라 견뎌야 했던 역경의 시간들이 전부 보상된다는 게 신천지의 유혹이죠.”
10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변상욱(61) 전 CBS 대기자(현 YTN 앵커)의 말이다. 2006년부터 15년간 신천지 문제를 취재, ‘신천지 전문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신천지의 유혹을 ‘터널 진입’에 비유했다.
일단 신천지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골칫거리가 사라진다. 대학생이라면 시험 취업 학점 등 ‘스펙’ 쌓기 같은 걱정이 없어진다. 첫 번째 리셋이다. 이후에는 ‘터널 비전의 함정’에 빠진다. 터널 속 과정은 내버려둔 채 터널 끝에 있다는 빛만 보는 것이다.
빛이란 자신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인(印) 맞은 자’, 즉 선민(選民)인 14만4,000명 중 한 명이 되는 순간이다. 다시 리셋이 일어난다. “신천지 교리에 따르면, 선택된 용사가 될 경우 영토와 높은 지위, 종처럼 따르는 피지배 계급을 받게 된다”는 게 변 기자의 소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요구되는 현실적인 포기와 희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때 이탈을 막는 장치가 ‘원 플러스 원 보너스’다. “선택 받은 용사의 직계 가족은 등급이 올라갑니다. 자기를 말렸던 부모가 ‘네 판단이 옳았다. 네 덕에 구원을 받게 됐다’며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거예요.”
결국 신천지가 건드리는 건 죽지 않고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제도 종교는 구원이나 해탈을 먼 미래의 막연한 목표로 설정하지만, 신천지는 다르다. 구체적으로 코앞에 들이민다. “‘네 얼굴과 의식, 기분 그대로 영원히 산다’고 강변해 개인적 자아 소멸의 공포를, ‘선택 받은 그룹 안에 들어가 지배 계급이 될 수 있다’는 약속으로 ‘루저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회적 자아 소멸의 두려움을 각각 해결해준다”는 게 변 기자 설명이다.
그래도 황당한 게 사실이다. 변 기자는 한국 청년들만의 특징에서 단서를 찾는다.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인지도 모르겠는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한국 청년의 특질 중 하나가 피동성입니다.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다른 사람이 결정해주기를 기다리는 거죠.” 이렇게 오랜 ‘그루밍’(길들이기)에 의해 의존적 상태가 돼버린 청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자마자 신천지가 준비한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을 만나면 무력해지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추론이다.
변 기자에 따르면, 신천지의 청년 포섭은 아주 적극적이다. 가출을 유도하고 거처도 알아봐주는 식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46명이 나와 국내 아파트 중 처음 ‘코호트 격리’(통째로 봉쇄) 조치가 이뤄진 대구 한마음아파트도 신천지가 알선한 ‘핍박자 숙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변 기자 판단이다.
영생(永生)을 기다리는 신천지 청년 신도들의 삶은 고달프다.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신천지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합니다. 한 방에 먹으려 하지 않아요. 이번 달에는 딱 1만원씩만 헌금하자고 하죠. 신천지 안에 매점이 있는데 웬만한 물건은 거기서 사야 합니다. 모자부터 양말, 속옷까지 다 있어요. ‘들어온 돈은 못 나가게 해야 한다’는 게 이만희 총회장의 지시라고 합니다.”
신천지가 청년 포섭에 본격 착수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전남ㆍ광주 베드로 지파가 앞장섰다고 한다. 애초 신분을 감추고 기성 교회에 들어가 교인들을 빼오는 ‘모략에 의한 추수꾼 전략’을 처음 도입한 것도 베드로 지파였다. “신천지 성장기 지파 경쟁 체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곳이 광주였어요. 추수꾼 전략이 전국 매뉴얼로 바뀌고 다른 지파가 쫓아오니까 광주가 다시 꾀를 냈는데, 그게 청년 대학생 선교였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헌금을 가져오고 전공별로 골고루 있다 보니 지방자치단체 공모 사업을 따낼 때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00년대 중반부터 청년 저변이 탄탄해집니다.” 현재 20, 30대 신천지 청년 신도의 비율은 전체의 3분의 2에 이른다는 게 변 기자 얘기다.
고령(89세)인 이 총회장의 후계 구도는 복잡하다. 충청ㆍ대전 맛디아 지파장 장모씨와 광주 베드로 지파장 지모씨의 분리 독립이 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이 총회장 본래 부인인 유모씨의 세력이 강력하고, ‘기회주의 중도파’가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한다. 교세 확장에 크게 기여하며 ‘절대적 2인자’로 부상했다 지금은 탈퇴한 이 총회장 ‘영적 배필’ 김남희 전 세계여성평화그룹(신천지 산하 단체) 대표가 ‘컴백’을 노리는 중이고, 이미 떨어져 나간 15개 세력 가운데는 ‘새천지’(새로 언약한 신천지)가 두드러진다는 게 변 기자 전언이다.
신천지가 어찌 되든 신천지에 빠져 허덕이는 이들을 구제하는 건 기성 교회를 비롯한 사회 몫이라고 변 기자는 일갈했다. “신천지 신도를 사이코패스 취급하는 건 구조적 대책을 내놓으려는 의지가 없어서입니다. 자기 교회만 지키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신천지 신도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해법을 교회가 제시하고 부족하면 정부에 도움도 구하는 전향적 태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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