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멸균장갑 몇 백장 보내는 게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하지만 병원에 전화를 하니 바로 ‘물품은 언제나 부족하다’며 반기더라고요.”
대구보건고 간호과 교사 박성순(53)씨는 지난 9일 오후 동료들과 두툼한 박스를 들고 대구 파티마병원을 찾았다. 박스에 담긴 건 멸균장갑 250장과 비멸균 라텍스 장갑 1,500장, 일회용 수술복 40벌, 방호복 31벌 등. 계획대로라면 모두 학생들의 간호실습에 사용했을 물품이지만 학교는 고심 끝에 창고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치료 최전선에 있는 병원에 방역물품이 절실할거라는 판단에서다.
이 학교 교사들은 대구의 집단감염이 시작된 지난달 중순부터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인근 병원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구 중대형병원의 간호사ㆍ간호조무사 중엔 이 학교를 졸업한 제자도 많아 이들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20여명의 교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의료진 자원봉사 신청 인터넷 사이트를 드나들며 고민했다.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의료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만약 봉사활동 중 병에 감염된다면 학생들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 봉사를 마친 뒤 2주간 자가격리를 한다 해도 개학일을 넘길 수 있는데다 감염의 위험이 사라진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선택한 것이 물품기증이다. 박씨는 “파티마병원은 우리 학생들이 방학마다 현장실습을 하는 곳이고 졸업생들이 일하고 있어 꼭 힘이 되고 싶었다”라며 “더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 간호 특성화고인 경산여상의 교사들도 같은 마음이다. 이 학교 교사김양희(54)씨는 동료 교사들은 지난 6일 멸균장갑 125개와 수술용 마스크 100개, 멸균가운 117벌, 수술용 모자 200개 등을 경산 세명병원과 중앙병원에 전달했다. 두 병원은 경산에 단 둘뿐인 국민안심병원이자 경산여고 졸업생들의 일터다. 지난 2월 졸업생 중 두 명도 이들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제자들이 선별진료소에 배치된 건 아니라 덜 위험할거라고 다독이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직접 가서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우리에겐 학생들도 소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경산여상은 기증을 위해 학사일정을 조정, 1학기에 예정됐던 실습수업을 모두 2학기로 미뤘다. 당장은 어려워도 2학기 전엔 물품수급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다.
두 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간호 특성화고가 대구ㆍ경북의 병원에 방역물품과 성금ㆍ도시락 등을 전달했다. 10일 현재 이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은 마스크 1,500여장, 멸균장갑 6,800여장 등 의료진의 필수품이 대구ㆍ경북으로 향했다. 박성순ㆍ김양희 교사는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제자들에게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며 “감염병 예방 기본 원칙을 지키되, 처음 의료인이 되려 했던 그 마음을 되새기라”고 당부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