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순발력이 없고 둔한 저는, 스마트폰 게임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 배운 게임이 있으면, 그것만 몇 년이고 하지요. 지금 제 핸드폰에도 딱 하나만 깔려 있습니다. 4년 전, 친구가 동네 카페에서 장장 5시간 과외를 해 줘서 겨우 방법을 익힌 옛날 게임인데요. 이 옛날 게임이 최근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12년에 출시되었는데, 2020년에 세계 80개국 앱스토어 인기 순위 1위로 올라서는, 소위 역주행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중국에서는 이 게임의 인기몰이 현상이 심히 불쾌했는지, 검열을 통해 강제 삭제를 단행했습니다. 아니, 뭔 게임 이길래 코로나19와 관계가 있으며, 중국이 나서서 지울 정도냐고요? 설명을 들으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Plague Inc(한국명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영국의 게임 개발사 엔데믹 크리에이션스가 개발한 게임인데요. 플레이어가 전염병이 되는 게임입니다. 목적은 전 세계 인류를 감염시키는 것이지요. 바이러스, 박테리아 같은 세균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하고, 병균 이름을 지어준 뒤, 최초 발병 국가를 선택합니다. 그런 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전 세계인을 감염시키면 승리, 치료제 백신이 개발되어 완치율 100%가 되면 패배입니다.
여기까지만 설명 들으시면 ‘이 시국에 이런 폭력적인 게임이 인기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인기는 폭력적 측면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현실보다 훨씬 더 방역과 질병 관리 시스템이 잘 구축, 재현되어 있어서 훌륭한 질병 대응 시뮬레이터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거든요. 개발 당시부터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문을 얻어 만들어진 게임이라, 코로나19 이전에도 영미권 국가에서는 전염병 전파 과정을 익힐 수 있는 유용한 시뮬레이터로 평가받아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 게임을 중국에서는 왜 삭제한 걸까요? 최근, 전 세계의 유저들은 이 게임을 가지고, ‘코로나19 가상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있다고 합니다. 즉 병원균 종류는 코로나19에 해당하는 바이러스 균으로, 시작 국가는 중국으로 설정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이 현상이, 확산의 근원지가 중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당국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게임인지라, 중국으로 시작해 놓고 플레이하면 지금의 코로나19 확산 추세와 거의 비슷하게 게임이 펼쳐지거든요. 중국은 그 ‘현실성’이 불편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게임, 곰곰이 살펴보면 또 다른 ‘불편한 진실’들이 많습니다.
2012년, 출시 당시 상황을 반영해서 리우 올림픽이 열리냐 마냐가 게임 속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데요. 브라질이 개최를 고집 피우는 순간 전 세계로 감염자가 확 퍼지면서 게임 난이도가 쉬워지는 설정도 있고요. 전 세계 중에 꼭 한두 국가는 감염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면서, 자기들끼리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를) 집단 모임이나 단체 행사를 강행해서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지금의 어느 나라들과 놀랍도록 흡사하진 않나요?
상황 해결을 위해 자국민도, 게임 앱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워내는 무서운 나라. 이토록 위급한 상황에서는 올림픽을 멈춰야 한다는, 게임조차도 아는 사실을 외면하며 은폐하는 나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정부가 피땀을 흘려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부 집단’이 존재하는 최고 난도의 우리나라. 그야말로 박빙의 동북아 3국입니다. 자꾸만 헛발질을 하는 중인 두 이웃나라들의 공직자들에게, 또 우리나라의 ‘그 집단’에게 차라리 이 게임을 쥐어주고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발, 게임만큼이라도 합시다. 좀.”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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