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마스크 품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9일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지만 구입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지 않고 애매모호한 말만 반복한 것이 과열 현상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지난 3일 새로운 마스크 사용 권고안을 내놓기 전까지 정부는 건강한 사람이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간명한 마스크 착용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달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의사협회가 함께 마련한 마스크 사용 권고 사항을 보면 건강한 사람에 대해서는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공간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지 않다’고 권고하면서도 대중교통에서는 운전기사에게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은 빠져 있었다. 권고 사항 마련에 참여한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당시 본보에 “건강한 사람이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때 어떻게 할지 지침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도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반복했다. 정은경 중대본 본부장은 지난달 8일 관련 질문에 “일반인들이 마스크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어떤 마스크를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를 안내해드리는 것이지 모두가 다 마스크를 쓰는 것을 권고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정 본부장은 9일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반인 중 마스크를 써야 하는 우선순위만 거론하며 건강한 사람은 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에 대해 똑 부러진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 당국의 이런 태도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낸 미국ㆍ싱가포르 정부,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대조적이다. “대중교통 등 밀집 공간 및 지역에서는 건강한 사람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한 중국과도 다르다.
이런 모호함은 의도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확률은 낮더라도 마스크를 안 쓴 건강한 사람이 감염병에 걸리는 사례가 하나라도 나오면 언론 등으로부터 ‘정부가 마스크 쓰지 말래서 안 썼더니 감염됐다’는 식으로 공격을 받을 것이 두려워 책임지지 않기 위해 방어적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시민의 갈증을 풀어준 건 외려 지방자치단체였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중교통 이용할 때, 공공장소 방문할 때는 건강한 사람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사람들까지 전부 마스크 구매 행렬에 동참하게 해 마스크 품귀에 기여한 면이 있다.
마스크 불만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마스크 5부제 등 대책과 함께 지난 3일 새로운 마스크 사용 권고 사항을 냈다. 건강한 사람은 보건용 마스크를 꼭 쓸 필요가 없다며 뒤늦게 덜 모호한 입장을 냈지만 적잖은 이들은 정부가 마스크 수요를 맞추기 어려우니 이제 와 말을 바꾼다며 냉소한다. 서영준 교수는 “정부가 신종 코로나 대처에 잘한 것도 있지만 마스크 문제에 있어서는 소통에 실패했고 그 결과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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