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4년 전 대선에 이어 올해에도 ‘여성 대통령’의 꿈이 꺾인 가운데 ‘여성 부통령’은 가능할까. 애초 역대 최다인 6명의 여성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던 민주당에선 유력 주자들이 잇따라 낙마하자 뒤늦게 여성 부통령 후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민주정치의 규범 국가로 꼽히는 미국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이 처한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여성 부통령 후보 발탁 주장을 공론화하고 나선 건 4년 전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문턱까지 갔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간) CNN방송에 출연해 “올해 대선에서 첫 번째 여성 부통령이 탄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8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2016년엔 본선에 진출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아쉽게 낙선했다.
워싱턴이그재미너(WE)는 정치 베팅 사이트 베트온라인을 인용해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인사 10명 중 8명이 여성”이라고 전했다. 1순위는 일찌감치 경선 포기를 선언한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다. 이날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엘리자베스 워런ㆍ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 등 경선 낙마자들은 물론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유력 후보군에 속해 있다는 게 WE의 분석이다.
문제는 미국 정계의 공고한 ‘유리 천장’이다. 지난 1월 워런 의원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성차별이 남아 있다”고 폭로하면서 버니 샌더스 의원의 차별 발언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워런 의원에 따르면 샌더스 의원은 2018년 사석에서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샌더스 의원은 즉각 발언 사실을 부인했으나 이는 경선 토론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클린턴 전 장관도 2016년 대선 당시 패배 수락 연설에서 “누군가는 이 가장 높은 유리 천장을 깨길 바란다”며 미국 정치권 내 여성의 위치에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여성 부통령 후보를 내세우더라도 현직인 트럼프 대통령을 꺾고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역사상 여성 대통령은 물론 여성 부통령도 전무하다.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월터 먼데일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3선 하원의원 출신 제럴딘 페라로를 지명했고, 2008년 대선 때는 공화당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부통령 후보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낙점했다. 하지만 모두 패배했다.
미국 정치 사상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은 낸시 펠로시 현 하원의장(민주당)이다. 1947년 제정된 대통령 승계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 하원의장은 부통령에 이어 승계 2순위에 올라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장관 재직 당시 승계순위 4위였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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