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다”며 민주당 정권 난맥상 비판하더니
코로나19 위기 상황선 ‘사령탑 부재’ 등 드러내
“악몽과도 같았던 민주당 정권 당시로 돌아가도 좋습니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선거 때마다 현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의 뿌리인 민주당 정권을 비판할 때 즐겨 쓰는 말이다. 민주당 정권이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보여줬던 위기관리 능력의 난맥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하던 아베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는 잇단 위기관리 능력의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2012년 12월 2차 정권 출범 후 8년째로 접어든 장기 집권에 따른 오만과 기강 해이가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운데 정부 대응을 진두 지휘하는 사령탑이 부재하면서 관계부처가 따로따로 대응하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9일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사령탑 부재가 두드러지면서 국민들에게 위기관리 능력을 어필해 온 아베 정권에 타격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서는 내각관방의 ‘사태대처ㆍ위기관리 담당’(사태실)이 지진이나 태풍 등 대규모 재해나 항공기ㆍ선박 납치 및 테러, 미사일 공격 등의 사태에 대응하는 위기관리 부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증 대응에는 익숙하지 않아 후생노동성, 법무성, 외무성 등 관계 부처들이 제각각 대응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당초 감염증 대책은 내각관방의 ‘국제감염증 대책조정실’이 담당해야 하지만, 인원과 권한의 한계로 각료 회의 준비와 의사 진행 등에 쫓겨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도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감염증 대책에 경험이 없는 사태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ㆍ안보분야 담당 직원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전세기편으로 귀국한 일본인이 체류하는 시설에 배치되는 등 감염증 관련 지석이 없는 직원이 귀국자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산케이(産經)신문도 이날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관계 부처와의 연계가 부족 등으로 정권의 간판인 위기관리 능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2차 정권 출범 이후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인사들을 총리관저 주변에 배치했다. 대표적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과 2017년 북한 미사일 도발 등의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20~30분 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신속한 정보를 발신했고, 경찰 출신인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 관방부(副)장관도 각 부처의 사무차관보다 연장자로서 위기관리의 중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에서는 초동대응 과정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일본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한 이후 요코하마항에 들어온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격리에만 몰두하며 국내 확산 대응책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오히려 지방 정부가 선제적 대응에 나서자, 뒤늦게 지난달 26일 초ㆍ중ㆍ고 임시휴교 요청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5일 중국ㆍ한국발(發) 입국자에 대한 ‘2주간 대기’ 등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 부처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사전 예고 없는 정부 발표에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 큰 불편과 혼란을 야기했다.
최근 후생노동성은 ‘2주간 대기’ 조치와 관련해 지난 6일엔 중국과 한국에서 출발했어도 제3국을 경유해 입국하는 경우는 “대상 외”라고 밝혔다가 7일엔 “대상이 된다”고 밝히는 등 담당 부처들의 주먹구구식 대응은 이어지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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