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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띄운 편지] “바이러스와 싸움... 구급현장 23년, 지금이 가장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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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띄운 편지] “바이러스와 싸움... 구급현장 23년, 지금이 가장 힘들다”

입력
2020.03.10 01: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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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구급대원은 “힘내라”국민 응원 덕분에 버틴다 

119구급차량들이 8일 저녁 신종 코로나 확진자들을 태우고 생활치료센터 중 하나로 지정된 경북대 기숙사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대구소방본부 제공
119구급차량들이 8일 저녁 신종 코로나 확진자들을 태우고 생활치료센터 중 하나로 지정된 경북대 기숙사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대구소방본부 제공

23년간 소방 구급대원 일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다. 아니 ‘어렵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20년 넘게 만났던 응급환자들은 대부분 육안으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라 베테랑 구급대원들도 애를 먹는다. 아무런 증상 없이 집에서 입원 대기하던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진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 등 숱한 사고 현장을 겪었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 당황스럽다.

응급환자 이송은 1분1초를 다투는 시간싸움이다. 하지만 출동과 동시에 방호복부터 챙겨야 한다. 인원도 최소로 움직인다. 워낙 많은 환자가 쏟아져 인력부족 탓도 있지만 이송 도중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투입 인원은 많아야 2명이다. 환자 상태가 괜찮으면 구급대원 혼자 감당하기도 한다.

방호복을 입으면 금세 땀이 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비닐로 빨리 움직일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계단마저 좁은 오래된 빌라를 맞닥뜨리면 앞이 캄캄하다. 힘겹게 올라가 환자를 들것에 싣고 내려올 때는 보호안경까지 땀이 차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빨리 내려갈 수 없다. 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해도 더 빨리 옮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종일 미안한 마음이다.

박노욱 대구소방본부 코로나19 전담 구급팀장ㆍ대구중부소방서 구급대장
박노욱 대구소방본부 코로나19 전담 구급팀장ㆍ대구중부소방서 구급대장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며칠 전엔 아무리 연락해도 병상이 나오질 않아 4시간이나 환자와 구급차에 있었다. 환자는 숨을 헐떡이는데 오라는 병원은 없고 운전대를 잡고 내내 안절부절 했다. ‘빨리 오라’는 경북대병원의 호출을 받고는 울컥했다. 그때 어떻게 달려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구에 병상이 부족해 환자를 멀리 옮겨야 하는 것도 무척 죄송스럽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며 이렇게 장거리를 뛰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본래 응급환자 이송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는 게 원칙이다. 긴 시간 구급차 안에 누워 있어야 할 환자를 보면 미안하다. 신종 코로나 환자 대부분은 열이 많이 난다. 감염병 환자라 이불을 덮어줄 수 없다. 그래서 난방을 틀어달라고 한다. 구급차 안에서 방호복을 입고 히터까지 틀면 그야말로 땀 범벅이 되지만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 히터를 틀 수밖에 없다.

거의 매일 장거리 이송을 하고 있지만 병상만 있다고 하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간다. 제주도 빼고 국내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병원은 다 가본 것 같다. 이틀 전엔 전남 화순군 전남대병원까지 갔다.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2시간 넘게 걸렸다. 인천 인하대병원, 경기도 부천 순천향대병원도 갔다 왔다. 환자를 빨리 옮겨야 해 운전하는 내내 예민할 수 밖에 없다. 몇 시간씩 달려 병원에 도착하면 환자와 구급대원 모두 지친다. 하지만 입구까지 나와 기다리는 의료진을 만나면 다시 힘이 난다. 환자이송 뒤 곧바로 구급차를 소독한다. 운이 좋으면 병원 내 전용 탈의실에서 바로 씻을 수 있는데 그때서야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린다.

집에서 초조하게 입원실을 기다렸던 환자들도 막상 입원하게 되면 온 가족이 생이별을 슬퍼하며 눈물바다가 된다. 확진자 가족들은 대부분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이어서 환자가 구급차를 탈 때까지 배웅도 제대로 못한다. 멀리서 눈물을 훔치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든다. 어느 여성 환자의 남편은 승용차를 몰고 구급차를 쫓아와 아내가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돌아가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이송을 하는 대구소방안전본부 소속 대원이 격무에 힘이 든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이송을 하는 대구소방안전본부 소속 대원이 격무에 힘이 든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신천지 신자들이 보건당국에 협조를 잘하지 않는다는데 내가 만난 신자들은 구급대원의 설명을 잘 따랐다. 미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몸이 아픈데도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차에 오르기도 했다.

병상이 부족해 많은 환자들이 병원 근처도 못가보고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대기 중이다. 멀쩡하다가도 워낙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다 보니 사망 후 확진자가 되는 일도 벌어진다. 검사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다 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으면 구급대원의 한 사람으로 너무 죄송스럽다.

일반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도 걱정이다. 대구지역 대형병원 응급실이 모두 비상인데다, 교통사고 환자라도 열이 나면 일단 신종 코로나를 의심해 곧바로 받아주지 않는다. 때문에 사고로 크게 다치지 않으면 응급실에서 치료받기 힘들다.

지난달 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고 지금까지 거의 집에 들어가질 못했다. 대원들 대부분이 행여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걱정에 쉬는 날도 소방서 안에서 쉰다. 어린 자녀를 둔 대원들은 집안 어른들께 자녀를 맡겨두고 이산가족 생활이다. 보름 넘게 응급환자 이송에 파김치가 되지만 자가격리 중인 환자를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 다만 “힘내라”는 국민들의 응원 메시지 한마디에 버티고 있다. 정말 큰 힘이 된다.

박노욱 대구소방본부 코로나19 전담 구급팀장ㆍ대구중부소방서 구급대장

박노욱 대구소방본부 코로나19 전담 구급팀장ㆍ대구중부소방서 구급대장
박노욱 대구소방본부 코로나19 전담 구급팀장ㆍ대구중부소방서 구급대장

1972년 경북 예천 출생

1997년 대구시소방본부 소방공무원 임용

대구동부소방서 119 구급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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