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밥’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낸 청년이 있다. 음식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고는 하나, 역사적인 사건이나 현장을 음식과 연결 짓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음식 하나로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 하나로.
주인공은 올해 서른 하나의 권영덕씨.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지만, 밥을 뭉쳐 팔기로 하고 지난 1월 31일 주먹밥 전문점, ‘밥 콘서트’를 열었다. 위치는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옆의 한 배면도로.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이 들어간다는 사업장에서 그를 11일 만났다.
권씨는 “옛날부터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던 주먹밥이지만, 광주시민들에게는 ‘광주정신’을 담고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며 “40년 전 5월의 또 다른 아이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주먹밥 스타트업인 셈이다.
실제, 주먹밥은 1980년 5월 광주 대표 전통시장인 양동시장 상인과 동네 부녀자들이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나눠주던 음식. “어쩌면 오늘의 한국은 그 주먹밥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그를 창업으로 밀었다. “주먹밥을 통해 5월 정신을 알리고, 또 다른 한식의 세계화에도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던 터였다.
운도 따랐다. 퓨전 음식을 하는 어머니 식당 일을 돕다 주먹밥으로 독립을 꿈꾸던 때, 광주시가 주먹밥 사업자를 공모했다. 주먹밥을 광주 대표 음식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 몰라라 하겠느냐는 생각도 있었지만, 시가 저렇게 나서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 봤죠.” 주먹밥으로 ‘미향(味鄕) 광주’의 위상을 높이려는 광주시와 권씨의 이해가 서로 맞았던 것이다. 그 덕에 광주주먹밥 전문 1호점 타이틀을 얻었다.
메뉴는 그야말로 주먹밥 일색. 그렇지만 40년 전 주먹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등산나물주먹밥, 소고기표고주먹밥, 제육복음주먹밥, 김치대패삼겹주먹밥, 떡갈비주먹밥 등 16가지에 이른다. 손도 많이 가고 정성도 생각 이상으로 담아, ‘주먹밥 이상의 주먹밥’이라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 중에서도 주력 병기는 ‘5180세트메뉴.’ ‘5ㆍ18’에서 착안한 이름의 5,180원짜리 메뉴다. 주먹밥 두 알과 광주 대표 음식의 하나인 상추튀김, 서민 음식인 멸치국수와 떡볶이가 함께 나간다.
문제는 메뉴 이름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 권씨는 “아무리 의미 있는 장사라고 해도 영속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필수”라며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부가세 별도’ 라는 편법을 썼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손님들이 실제 내는 가격은 5,700원. 청년의 술책은 애교로 봐줄 만 하다.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이따금씩 와서 소주 잔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개업 한달 남짓한 동안 이 주먹밥집을 주로 찾은 이들은 인근 사무실의 30, 40대 직장인들이다. 권씨는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갖고 식당을 찾는 분들은 거의 없다”며 “그 분들에게는 단순히,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하나의 음식에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움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랬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도 않았을 것이란다. “우선 제가 맛있게 만들어야죠. 주먹밥을 통해 ‘나눔과 연대의 광주공동체정신’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광주=글ㆍ사진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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