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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도 ‘정책실험실’을 만들어 보자

입력
2020.03.1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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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로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효과가 검증된 정책만 실행할 수는 없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무슨 근거로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효과가 검증된 정책만 실행할 수는 없을까?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3월 9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에서 진 그날 저녁, 사람들은 불현듯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이러다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아니야?’ 1주일 뒤 정부는 신속하게 대책을 발표하였다. 한국형 알파고 개발을 위해 5년간 1조원을 투자하고, 삼성전자, 네이버 등 6개 기업과 공동으로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해 12월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17년부터 데이터 과학자 매년 500명 양성, 2020년부터 지능정보영재 매년 5,000명 배출을 약속했다.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나왔을까? 알파고가 인류에 충격을 준 지 5년이 지난 지금, 30억원씩 7개 기업이 출연하여 만든 인공지능연구원은 그 소임을 다하고 있을까? 매년 수백, 수천 명씩 배출하겠다던 데이터 과학자와 지능정보영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기회의 창이 열려 신통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패키지형 종합대책이 발표되어 그럴싸한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스리슬쩍 그 정책들은 자취를 감춘다.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무슨 근거로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효과가 검증된 정책만 실행할 수는 없을까?

영국, 덴마크, 핀란드 등 정책실험실(Policy Lab)을 운영하는 나라의 사례를 떠올려본다. 사회복지정책을 한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미리 실험해 보고 성공적이라고 검증되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한다. 영국,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페루 등은 행동분석팀(Behavioral Insights Team)이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적의 규제를 만든다. 영국은 세금납부고지서의 문구에 따라 세금납부율이 달라지는지를 실험하여 세금수입을 2억1,000만파운드(약 3,000억원) 증가시켰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무작위 통제실험으로 정책의 혜택을 입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하여 효과를 엄정하게 평가한다. 1966년 시작된 정책실험에서는 저소득층에 소득을 보전하는 세제 혜택이 오히려 일하는 저소득층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끝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전국 단위 정책이 되지 못했다. 효과가 검증된 정책만을 실행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19 사태 속에 시민들의 자발적 착한 임대인 운동이 일어났다. 딱 보름 뒤, 정부는 임대료 인하액 절반에 대해 세금을 깎아 주는 세제 혜택을 내놓았다. 칭찬을 기대했던 정부, 그러나 오히려 왜 건물주를 지원하냐며 비판이 돌아왔다. 세제혜택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이익을 주는지를 검증할 새도 없이 정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 몇 년 전부터 관심 받던 기본소득이 최근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부상하였다. 시대전환이라는 정당이 1인당 30만원을 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체 30만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갑자기 튀어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LAB2050의 정책연구에 근거한다.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소비가 살아나고, 불평등도 완화된다는 효과를 입증했다. 불필요한 정부지출을 아끼고 기존의 복지지출을 하나로 모으면 당장 1인당 30만원 정도의 재원은 마련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에서 나온 수치이다. 기본소득이 과격한 주장이라고 하지만 각 지방자지단체에서 나눠 주는 현금지급 복지수당이 이미 넘쳐난다. 탁상공론이 아닌 정책실험을 통해 효과성을 검증해 보면 될 일이다.

지능정보사회에서 정책과학과 그 방법론은 더욱 진화하고 있다. 정책은 실험과 검증을 거쳐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은 스마트한 정부를 신뢰한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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