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상경했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여성이 다른 대형병원을 찾아가 주소지를 거짓으로 밝히고 입원했다가 뒤늦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의료기관의 진료 거부와 환자의 거짓말이 겹쳐 대형병원 응급실이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의료기관이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우려로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과 ▲환자가 내력을 거짓으로 밝히는 상황을 모두 차단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8일 서울 중구의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78세 여성 A씨가 이날 오전 일찍 신종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다. A씨는 대구에 거주하다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마포구의 딸 집에서 지냈다. A씨는 이달 3일 서울의 B병원에 진료를 예약했으나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같은 날 A씨는 보호자와 함께 서울백병원 소화기 내과를 방문했고 구토 등 소화기 증상에 대한 진료를 받고 입원했다. 이때 거주지를 딸의 집으로 밝혔다. 백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은 호흡기 환자의 동선을 분리해 진료하는 국민안심병원”이라면서 “A씨가 주소지를 제대로 밝혔다면 다른 증상을 의심해서라도 선별진료소에서 진료하고 신종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입원기간에도 대구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진이 여러 차례 대구를 방문했는지 물었으나 A씨는 그때마다 부인했다. 이후 의료진이 청진 소견에서 신종 코로나를 의심해 A씨에 대한 흉부 X선ㆍCT 촬영(6일)과 신종 코로나 검사(7일)가 진행됐다. A씨는 8일 오전 신종 코로나 확진 사실을 전달받고 나서야 대구가 실제 거주지이며 대구에서 다녔던 교회의 부목사가 확진판정을 받았다고 백병원 측에 털어놨다. A씨는 백병원 내부 음압병실에 격리돼 있다가 8일 오후 국가지정격리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가 거주지를 속인 탓에 뒤늦게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백병원은 응급실은 물론 외래진료실과 병동 일부를 폐쇄해야 했다. A씨와 접촉한 의료진과 종사자는 병원 또는 재택에 격리됐고 다른 입원환자의 이동도 중단됐다. 백병원은 8일 밤 늦게까지 A씨가 입원했던 병동의 다른 환자와 A씨와 동선이 겹치는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 중이다.
백병원의 설명대로 A씨가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B병원이 진료를 거부했다면 적절한 대처였는지도 역학조사 과정에서 따져봐야 한다. 백병원은 B병원은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이라고만 밝혔는데 동네의원 수준이 아닌 대형병원이라면 어떤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신종 코로나 발병까지 의심했다면 보건소나 선별진료소를 찾으라고 안내했는지 여부도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 이처럼 대구에서 왔다거나 해외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기침 등 신종 코로나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신종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는 경우(사례정의)가 아닌 환자를 진료하지 않았을 때는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침을 각 의료기관에 전달한 상황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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