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벌써 100여 나라에서 10만명 넘게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도 4,000명에 이른다. 감염병 전문가인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교수는 “1년 안에 전 세계 성인의 4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 정도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바이러스 정체는 무얼까.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에 단백질 껍질을 뒤집어쓴 지름 100㎚(나노미터ㆍ10억분의 1m) 정도의 단순하고 미세한 반(半)생물로, 지구상에 8,000여 종류나 서식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세포에 빌붙어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사활은 이들이 기생하는 숙주(host)에 달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이러스가 원래 기생하던 숙주가 아니라 종(種)이 다른 숙주로 ‘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을 뛰어 넘으면서 새로운 숙주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물론 2003년 유행했던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는 야생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면서 치명성이 높아진 경우다.
바이러스 역시 모든 생물체의 공동 목표인 자손 퍼트리기를 위해 ‘치고 빠지기’나 ‘들어가 버티기’ ‘들어가 숨기’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다행히 바이러스는 영리하다. 바이러스가 오래 살아남아 새로운 숙주로 옮겨가려면 기존 숙주를 죽이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대한 병원성(치명성)을 점점 줄이는 대신 전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꾼다. 강력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계절성 독감으로 순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바이러스는 천하무적도 아니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눈ㆍ코ㆍ입 등을 통해 기관지나 식도를 거쳐 몸속으로 침투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외부 침입자를 격퇴할 수 있는 방어체계인 ‘면역’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호중구 대식세포 자연살해세포(NK세포) T세포 B세포 등이 바이러스를 상대하는 전사(戰士)들이다.
호중구 대식세포 NK세포 등 선천 면역세포는 몸에 들어온 침입자를 발견하는 즉시 제거해 버린다. 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세포를 검사해 이상한 세포는 제거하고 주변 면역세포를 모아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한다.
선천 면역세포가 뚫리면 후천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나 B세포가 나선다. T세포는 적군이라는 표식을 단 특정 침입자를 공격하고, B세포는 T세포의 정보를 토대로 적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특정 항체를 만들어 이후에 똑같은 적이 쳐들어오면 빠르고 정확하게 제압한다. 이처럼 건강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항바이러스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나이가 많거나 당뇨병ㆍ고혈압ㆍ만성콩팥병 등 기저질환을 앓아 면역체계가 약해진 경우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서 사망한 사람은 거의 모두 면역력이 떨어진 면역 취약자들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이들이 특히 손 씻기ㆍ마스크 착용하는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각종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라틴어로 독(毒)이란 뜻을 가진 바이러스는 600만년 전 아프리카 밀림에서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반자다. 국내 코로나19 감염자가 벌써 7,000명을 넘어섰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해 안심해서도 안 된다. 초기에 지나친 낙관이 집단 감염을 키웠고, 집단 감염 후 지나친 공포가 마스크 사태를 낳았다. 인류가 수많은 팬데믹을 극복했듯이 이번 코로나19도 이전의 다른 바이러스처럼 가끔 우리를 괴롭히는 정도의 바이러스로 남게 될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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