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장 휴관과 공연 취소ㆍ연기가 잇따르면서 온라인 실황 중계가 각광받고 있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온전하게 느끼기는 어렵지만, 대신 배우의 표정과 몸짓을 여러 각도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어 공연 팬은 물론 일반 시청자의 만족감도 높다. 지난 2일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녹화 중계된 뮤지컬 ‘마리 퀴리’는 누적조회수 21만건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한번 ‘집콕’이 예정된 이번 주말, TV 다시 보기와 영화 VOD 다운로드 말고 ‘온라인 공연’ 관람은 어떨까. 클릭 두세 번이면 집안에 무대가 펼쳐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인 창작산실 작품들 중 온라인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연극들을 소개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연극 ‘마트료시카’
벌써 노동자 마흔세 명이 자살한 회사인 알파 노트북은 중요한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빈번한 자살 사건으로 기업 사찰이 결정되자 회사는 직원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한다. ‘오늘은 절대 자살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낭독하거나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소지품도 검사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살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노동자 한 명이 마침내 자살에 성공하고, 회사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자의 죽음을 위장한다.
국립극단의 2018 세계고전 시리즈로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소설을 무대화한 ‘성(城)’을 각색ㆍ연출했던 이미경 작가와 구태환 연출의 신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현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더 고립되는 인간의 모습을 서커스 곡예사에 빗대어 예리하게 꼬집는다.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이 생긴 마트료시카 인형은 자본주의의 폐곡선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을 은유한다. 4월 1일까지 관람 가능.
◇연극 ‘아랫것들의 위’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쌓여 산을 이룬 곳, 사람들은 물건을 채집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수집가가 나타나 ‘주운 물건을 가져오면 원하는 다른 물건을 내어주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수집가와 거래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수집가는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 이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는다. 우연히 메뉴판에서 돈가스라는 음식을 발견한 안녕소년은 친구들과 나눠 먹을 꿈을 꾸고, 물건을 감정하는 감정사를 만나 쓰레기 산으로 향한다.
쓰레기로 연명하는 암울한 세상, 인간들의 이해타산이 서로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인간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 연극이다. 박연주 연출은 “버려지고 멈춰진 세계의 공허함 속에서 희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언덕처럼 비탈진 삼각형 회전 구조물과 그 가운데 뚫린 구멍 등을 활용한 독특한 공간 연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눈길을 끈다. 4월 3일까지 관람 가능.
◇연극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2016년 가을밤, 임실 옥정호 근처의 매운탕 집 마당. 금강혼식을 하루 앞둔 입분과 그의 소꿉동무이자 매운탕 집의 주인인 순희 앞에, 어렸을 적 동무였던 소녀가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왜 입분이 말을 잃었고 순희가 혼자 매운탕 집을 하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란히 앉아 과거로 되돌아간 세 사람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을 넘나들며 지난 사건들을 하나씩 되짚기 시작한다.
1951년 3월 한국전쟁 당시 전북 임실군 옥정호 인근에 주둔했던 국군이, 빨치산에게 밥을 해 줬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 200여명을 집단 학살한 ‘배소고지 양민학살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당시 바위 뒤에 숨어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의 구술 기록이 토대가 됐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던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재조명하고,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로 전쟁의 비극을 전하며, 지금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선택으로 삶을 살아낼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무기한 관람 가능.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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