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ㆍ끝> 메가라 칙령과 2차 펠로폰네소스전쟁
※ 태평양전쟁에서 경제력이 5배 큰 미국과 대적한 일본의 패전은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베트남 전쟁처럼 경제력 비교가 의미를 잃는 전쟁도 분명히 있죠. 경제 그 이상을 통섭하며 인류사의 주요 전쟁을 살피려 합니다. 공학, 수학, 경영학을 깊이 공부했고 40년 넘게 전쟁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온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기원전 432년, 아테네는 자신이 주도하는 델로스동맹 내 소속 국가들에게 칙령을 선포했다. 메가라의 시민이 델로스동맹국에 발을 들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칙령을 선포한 아테네의 속마음은 누구에게라도 분명했다. 즉 메가라를 경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영원히 살 듯, 내일 죽을 듯
메가라는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반도의 서부에 자리잡은 국가였다. 전설에 의하면 메가라는 아티카를 나눠 가진 네 개 부족 중 하나였다. 아테네의 여덟 번째 왕 판디온 2세는 삼촌과 사촌들에게 왕 자리를 뺏겼다. 메가라로 도망간 판디온은 메가라 공주인 필리아와 결혼해 메가라 왕위에 올랐다. 판디온과 필리아의 네 아들 중 한 명인 니소스는 메가라 왕위를 이었고 다른 한 명인 아에게우스는 아테네의 왕위를 되찾았다.
메가라의 동쪽에 아테네가 있다면 메가라의 서쪽에는 코린트가 있었다. 코린트는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입구에 자리한 국가였다. 메가라에서 아테네와 코린트까지의 거리는 각각 30여㎞로 비슷했다.
메가라인은 탐험과 새로운 식민지 건설에 적극적이었다. 기원전 685년 보스포러스해협의 지중해 쪽 동안에 칼케돈을 건설했고 기원전 667년에는 해협 서안에 비잔티움을 건설했다. 나중에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1,000년 이상의 영화를 누린 비잔티움은 메가라 사람 비자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메가라는 소아시아 카리아에 있는 밀레토스와 오랜 기간 동안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두 도시는 그리스신 아폴로의 오라클을 중시하는 것 외에도 여러 공통점을 지녔다. 특히 밀레토스는 실질을 중요시하는 여러 인물의 모국으로도 유명했다. 예를 들어 역사상 최초의 옵션 거래로 떼돈을 번 탈레스가 이곳 출신으로, 그는 빚 보증을 서지 말라는 충고를 남겼다. 또한 후대의 동포 이시도로스는 비잔티움의 유명한 성당 하기아 소피아의 건축을 이끌었다.
탐험과 실질을 중요하게 여긴 메가라인은 농업 외 여러 산업에 종사했다. 가축의 사육에 능했던 메가라는 양모와 말의 수출로도 유명했다. 북쪽으로 코린트만과 남쪽으로 에게해에 접한 지리적 특성에 힘입어 메가라는 해상무역으로 적지 않은 부를 축적했다. 종교적 열정이 높았던 메가라인은 돈을 아끼지 않는 후함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바 “영원히 살 것처럼 신전을 짓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는 평이 자자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오간 메가라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한 2차 페르시아-그리스전쟁에서 메가라는 스파르타 및 아테네와 함께 페르시아에 맞서 싸웠다. 일례로, 전쟁의 향배를 바꾼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해전에서 메가라의 3단노선 20척은 아테네의 180척보다 적었지만 스파르타의 16척보다는 많았다. 또 기원전 479년의 플라타에아전투에서 메가라는 3,000명의 중장보병을 파견해 1만 명의 스파르타, 8,000명의 아테네, 5,000명의 코린트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참전시켰다.
기원전 460년 아테네는 메가라와 새롭게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전까지 메가라는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동맹에 속해 있었다. 메가라가 펠로폰네소스동맹을 탈퇴한 직접적인 이유는 서쪽의 코린트와 벌인 영토 분쟁이었다. 스파르타는 두 동맹국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가깝고 힘이 센 코린트 편을 든 셈이었다.
이내 발발한 1차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메가라는 델로스동맹의 일원으로 아테네 편에서 싸웠다. 특히 코린트만에 면한 메가라의 항구 파가에는 아테네 해군이 에게해뿐만 아니라 코린트만의 제해권까지 장악하게 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비롯된 아테네군의 이집트 원정대가 기원전 454년 몰살되면서 전쟁의 동력을 잃었다. 오랜 전쟁에 지친 양 세력은 기원전 445년 향후 30년간 평화를 약속하며 휴전했다. 메가라는 휴전 이전에 다시 펠로폰네소스동맹에 합류했다.
평화는 30년간 지속되지 못했다. 기원전 440년 델로스동맹에 속했던 사모스가 아테네에 반기를 들자 델로스동맹에 위기가 닥쳤다. 펠로폰네소스동맹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스파르타는 개입하지 말자는 코린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기원전 435년 코린트의 식민지 코르키라와 코린트 사이의 분쟁에서 아테네는 함대를 보내 코르키라 편에서 싸웠다. 펠로폰네소스동맹에 속한 메가라가 코르키라-코린트 분쟁에서 동맹국인 코린트 편을 들자 아테네는 직접적인 군사행동 대신 메가라에 대한 경제제재를 들고 나왔다.
◇무차별 공격수단 경제제재, 그 효과는
군사력 대신 경제력으로써 적국을 압박하고 공격한다는 개념은 이후 경제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프로이센 군인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은 다른 수단들을 혼합한 국제정치의 연속에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 경제전쟁은 합당한 전쟁의 형태였다. 무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의도를 갖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려 한다는 점에서 경제제재는 전시와 평시를 구별하지 않는 공격 수단이었다.
경제제재로써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목표는 다양했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 내 그리스계 정치인의 수감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그리스는 알바니아로 향하는 유럽연합의 경제적 지원을 막아섰다. 보다 일반적인 목표는 군사적 모험을 중단시키거나 전략적 역량을 억제하는 경우였다. 가장 흔한 목표는 역사적으로 약 40%에 해당하는 상대국 정권의 붕괴나 교체였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수단으로서 경제전쟁의 효과는 불투명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원의 게리 허프바우어와 제프리 쇼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경제제재가 명시적인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34%에 지나지 않았다.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는 허프바우어와 쇼트의 연구결과를 검토한 후, 34%에 해당하는 40건의 제재 중 실제로 성공이라 부를 수 있는 경우는 다섯 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전쟁은 종종 포위 공성전에 비유되기도 했다. 도시나 성의 식량 유입을 차단해 항복을 받아내려는 공성전은 무기를 들지 않은 무고한 민간인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또 오히려 기존 체제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이 결집하게 만드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경제제재는 가하는 쪽보다는 받는 쪽의 상황이 중요했다. 즉 아무리 가하는 쪽이 철저하게 하려 해도 받는 쪽 관점에서 철저하지 않다면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았다. 일례로, 1935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지금의 에티오피아인 아비시니아를 침공했을 때 약 8개월간 지속된 국제연맹의 제재는 연맹국이 아닌 미국과 소련의 불참으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국 아테네 무너뜨린 부메랑
메가라를 경제적으로 봉쇄한 아테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제재의 표면적인 명분은 엉뚱했다. 아테네와 메가라의 국경 부근에는 히에라 오르가스라는 곳이 있었다. 아테네인에게 히에라 오르가스는 농경의 여신인 데메테르와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섬기는 신성한 지역이었지만, 메가라인에게는 경작이 가능한 보통의 땅일 뿐이었다. 아테네는 경제제재의 이유로 메가라의 신성모독을 들었다. 메가라는 신성모독의 혐의를 부인하지 않은 채로 아테네의 제재가 가져올 심각한 결과에 대해 엄중히 항의했다.
메가라는 곧바로 펠로폰네소스동맹을 이끄는 스파르타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난 10여 년간의 아테네 행동을 기억하고 있던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특사단을 파견했다. 메가라에 대한 경제봉쇄 칙령을 당장 폐지하지 않으면 펠로폰네소스동맹 전체가 아테네를 상대로 군사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아테네는 칙령을 폐지할 수 없노라고 버텼다.
다음해인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동맹은 아테네를 상대로 전쟁을 개시했다. 델로스동맹에 속한 아테네의 동맹국들은 모두 자동으로 전쟁에 끌려 들어갔다. 동시기를 살았던 투키디데스는 메가라 칙령을 2차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썼다. 아테네는 기원전 404년 패망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게 칙령의 목표였다면 성공이었고 메가라의 굴복이 목표였다면 완전한 실패였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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