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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영화로운 사람] 총알 같은 결정으로 영화 왕국 일군 승부사

입력
2020.03.05 18:00
수정
2020.03.05 18:4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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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우석 감독

※ 영화도 사람의 일입니다. 참여한 감독, 배우, 제작자들의 성격이 반영됩니다. <영화로운 사람>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만나 본 국내외 유명 영화인들의 삶의 자세, 성격, 인간관계 등을 통해 우리가 잘 아는 영화의 면면을 되돌아봅니다

강우석 감독은 제작자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는 몇 안 되는 영화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우석 감독은 제작자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는 몇 안 되는 영화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안성기는 1997년 30대 후반 감독에게 부인을 통해 여자를 소개시켜줬다. 영화 여러 편을 흥행시키며 일찌감치 재력을 쌓은 감독이 더 늦기 전 결혼을 하고 싶어해서였다. 감독은 두 여인이 약속 장소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선 안성기에게 급하게 속삭였다고 한다. “형, 저분이랑 결혼할래요.”

영화계에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식 소문이다. “설마 그럴 리가”라고 반응할 만한 일인데, 30대 후반 감독이 강우석 감독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영화인들이 적지 않다. 급하고도 급한, 강 감독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강 감독은 2013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만난 지 두 번 만에 청혼해 두 달 만에 결혼했다”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영화광이었던 강 감독은 성균관대 영문과를 다니다 그만뒀다. 1980년 방위 복무 시절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본 후 가슴이 뛰었고, 제대 후 충무로에 곧바로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현장에 가면 너무 늦는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역시나 급한 성격이 작용했다.

강 감독은 말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다. 술자리도 일찍 파한다. 별일 없으면 매일 아침 조조로 영화를 본다. 데뷔도 빨랐다. 29세 때 ‘달콤한 신부들’(1989)로 감독이 됐다. 데뷔 시기로만 따지면 원로급이다. 촬영장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오히려 예정보다 촬영이 빨리 끝나 제작비가 남기도 한다. 웬만하면 하루 8시간 촬영을 지킨다. 스태프 사이에선 “우리는 ‘공무원 팀’”이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다. 2010년 강 감독의 ‘글러브’ 촬영 현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군사 작전 펼치듯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강 감독의 지시는 굵고 짧았다. 촬영 후 저녁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을 가 보니 배우와 스태프 인원 수에 맞춰 상이 모두 차려져 있었다. 반주를 곁들인 식사가 끝나고 모두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촬영을 위해 절제하는 모습이었다. 결정은 빠르고 준비는 철저히 하는 강 감독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강 감독의 급한 성격은 사업 고비마다 승부사 기질로 발현됐다. 강 감독은 1993년 자신의 영화사 강우석프로덕션을 차렸다. ‘미스터 맘마’(1992)로 잭팟을 터트린 이후였다. ‘투캅스’ 시리즈와 ‘마누라 죽이기’(1994) 등이 잇달아 흥행하며 회사 몸집을 키웠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에 자본이 유입되고,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자 강우석프로덕션을 시네마서비스로 재편했다. 영화 제작, 투자, 배급을 넘어 멀티플렉스 체인을 운영하기도 했다.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등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에 맞서는, 대표적인 충무로 토착 자본이었다. 2000년대 국내 영화계 파워맨 1위로 꼽히곤 했던 이유다. 강 감독은 충무로의 마지막 제왕적 감독이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 감독의 성격이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이 투자를 못 받아 좌초 위기에 놓였을 때 먼저 연락해 투자 제안을 했다.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감독이 투자를 못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운전 중 전화했다는 후문이다. 임 감독은 ‘취화선’으로 2002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사상 첫 칸영화제 수상이었다. 강 감독은 엎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기사회생시키기도 했다. 차승재 전 싸이더스 대표가 돈이 될 영화 ‘화산고’(2001)와 돈이 안 될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묶어서 내밀자 각본을 읽지도 않고 바로 투자 결정을 했다.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장고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는 평가가 많았다. 강 감독이 있는 술자리의 건배사는 매번 “한국 영화를 위하여”다.

강 감독의 성격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직선적이다. 에두르지 않는다. 대사도 명확하다.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실미도’) 같은 문어체에 가깝지만 공격적인 대사를 선호한다. 영화 대부분이 사회성이 짙다.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은 결혼하지 못해 자살하는 농촌 총각이 느는 당시 사회 현상을 소재로 삼았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 시리즈처럼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태를 들췄다. ‘실미도’(2003)와 ‘한반도’(2006)는 근현대사를 들여다 봤다. 한없이 딱딱해질 수 있는 주제와 소재에 유머를 버무린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영화의 새 부흥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국 영화 산업이 대기업 위주로 바뀌어서 예전처럼 봉 감독 같은 재능 있는 신인을 길러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현재 산업 환경에 맞춰 신진 감독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해 내야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국 영화의 큰 그림을 그리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큰손이 하나쯤 다시 있었으면 좋겠다. 강 감독은 흔치 않은 롤모델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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