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국 발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격리 등의 절차를 강화한 나라가 5일 오후 기준 98개 국가로 집계됐다. 세계의 절반이 한국에 빗장 걸고 있다는 우려가 늘고 있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들의 투박한 조치”라고 표현했다. 최근 외교부 고위당국자도 “소규모 국가들, 그리고 방역 역량이 취약해 외부에서 감염병이 유입되면 자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국가들이 선제적인 조치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런 평가는 과연 타당할까. 일단 근거는 확인된다. 98개 국가ㆍ지역 중 방역 능력이 미흡하다고 평가되는 곳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안보센터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보건안전(GHS) 지수 보고서를 기준으로 한국에 조치를 취한 국가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 국가의 평균 지수는 100점 만점에 39.6점으로 나타났다. ‘반타작’인 50점을 넘긴 곳은 15곳뿐이다.
GHS 지수는 한 나라의 전염병 대응 관련 6개 항목(예방ㆍ탐지ㆍ신속 대응ㆍ보건체계ㆍ국제기준 준수ㆍ위험환경)을 종합해 평가하는 틀이다. 지난해 세계 195개국의 평균 점수는 40.2점, 상위 소득 국가 60곳의 평균은 51.9점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에 대해 전면 또는 부분 입국 금지를 한 37개국(국가가 아닌 미국령 사모아, 홍콩, 팔레스타인은 평가에서 제외)중 GHS 기준 ‘가장 준비가 안 된’ 최하위 73개국에 포함되는 곳이 16개였다. 마이크로네시아(32.8점), 세이셸(31.9점), 자메이카(29점), 코모로(27.2점), 사모아(26.4점), 바누아투(26.1점), 이라크(25.8점), 피지(25.7점), 앙골라(25.2점), 투발루(21.6점), 나우루(20.8점), 솔로몬제도(20.7점), 쿡제도(20.4점), 키리바시(19.2점), 마셜제도(18.2점), 적도기니(16.2점)이다. 실제로 소규모 섬나라이거나,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 속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이들 국가들의 평균 지수가 높아질수록 한국발 여행객에 대한 조치도 완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입국금지 조치 국가는 평균 37.5점, 시설 격리 조치를 취하는 국가 13곳(마카오 제외)은 36.5점이었다. 자가 격리 권고나 검역강화 등 수준의 조치를 하는 44곳(대만,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제외)은 42.8점이었다.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조치를 한 나라 중 영국(77.9점), 호주(75.5점), 태국(73.2점), 덴마크(70.4점)는 GHS 기준 ‘가장 잘 준비된’ 13곳에 속한다. 이날부터 일주일간 한시적으로 한국 발 여행객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한 호주를 제외하면 검역 강화 및 권고 조치만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70.2점으로 전체 국가 중 9위다. 전염병에 대한 조기 발견은 92.1점(5위), 신속한 대응은 71.5점(6위)를 기록했다. 전세계 국가 중 종합 GHS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미국(83.5점)이다.
결국 방역 역량이 충분하지 못한 국가 중심으로 한국 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다는 얘기는 일정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셈이다. 하지만 강 장관의 표현이 적절했느냐에 대해선 비판도 여전하다. 이만희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강 장관이 비판 여론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에 남 탓에 외교 결례까지 저지른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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