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프로야구는 반발력을 낮춘 공인구의 역습에 홈런 수가 전년 대비 약 43% 감소하며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벌크업(몸집 키우기) 열풍’도 사그라졌다. 공인구 변화에 맞춰 많은 선수들이 택한 변화는 체중 감량이다. 순발력을 키워 빠르고 정교한 타격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보다 가벼운 몸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은 요즘 ‘케토제닉(Ketogenic) 다이어트’에 빠졌다. 이는 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고지) 다이어트로, 탄수화물 섭취는 전체 식사 구성의 5%로 낮지만 지방 섭취는 75%로 매우 높은 식단이다
케토 다이어트가 비만, 당뇨, 고지혈증에 효과적이라고 밝혀지면서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지만 사실 케토 다이어트는 약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식단이다. 1920년대에 간질을 연구하던 의사들이 저탄고지 식단으로 지방의 대사물질인 케톤(ketone) 수치가 상승하면 환자의 간질 발작 횟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게 케토 다이어트의 시초가 된 것이다.
우리 몸의 기본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해 체내에 저장된 지방을 사용하도록 하는 케토 다이어트는 건강적 효능과 안정성에서 여전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양학자와 운동생리학자 등 많은 전문가가 고지방 섭취의 케토 다이어트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5개 전문 학술 단체(대한내분비학회, 대한당뇨병학회, 대한비만협회, 한국영양협회,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2016년에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단이 장기적으로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건강과 영양학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이 외에도 매년 35가지의 식단을 심층 분석하여 최고의 식단을 선정하는 US 뉴스앤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2020년 최고의 다이어트 식단’에서 케토 다이어트를 최악의 식단으로 뽑았다. 과일과 채소, 올리브유, 통곡물과 생선 등을 주로 섭취하는 지중해식 식단이 3년 연속 1위, 과일과 채소, 통곡물, 기름기 없는 단백질과 저지방 유제품 위주의 식단에 염분 섭취를 줄인 대쉬(DASH) 다이어트가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저탄고지 식단인 케토 다이어트는 당뇨 및 심장질환 예방 효과가 없고, 장기적 체중 감량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까지 받으면서 최악의 식단으로 뽑혔다.
케토 다이어트가 위험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천시 스포츠과학 센터장인 김도윤 운동생리학 박사는 “저탄고지 식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방산의 대사물질인 케톤체는 산성 물질로 이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 간과 신장이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당연히 신체와 장기에 부담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당뇨병과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저탄고지 식단의 부작용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마그네슘 등과 같은 전해질 부족으로 인한 손발 저림과 눈 떨림 증상, 뇌가 최우선으로 사용하는 포도당 부족으로 인한 학습능력 저하, 섬유질 섭취 부족 및 지방의 과량 섭취로 인한 변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복통, 호흡 곤란, 피로감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몇몇 프로 야구 선수의 케토 다이어트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저탄고지 식단이 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마다 상반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케토 다이어트가 운동 중 지방 사용을 높여 사이클, 마라톤과 같은 지구력 스포츠의 경기력을 향상해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화 구단의 영양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주영 스포츠영양학 박사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운동의 효율성을 낮추고 지구력과 파워 등의 운동 수행 능력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운동 시 피로도까지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운동 후 탄수화물 섭취는 회복에서 아주 중요한데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를 통해서는 운동 후 충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경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롯데 구단 트레이너 김용진 운동생리학 박사도 “약 3시간 정도의 저강도 장시간 운동에서는 지방이 주된 에너지원이지만 인체 내에는 이미 충분한 지방이 저장돼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지방을 섭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뒷받침했다.
우리 몸은 간과 근육 등의 세포 내에 저장된 탄수화물과 지방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체중 65㎏에 체지방율 12% 정도의 남성은 체내에 약 2,500kcal의 탄수화물과 약 7만kcal의 지방을 저장하고 있다고 하니 운동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지방 섭취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야구와 같은 고강도 파워 스포츠에서 케토 다이어트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덕 재로우 체력 코디네이터는 “야구는 95% 무산소성 운동으로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한다. 예를 들면 투구의 총 동작은 1.0~1.5초로 매우 짧다. 이때 필요한 것은 빠르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탄수화물이지, 지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야구 경기 시간이 3시간 가량으로 길다고 저강도 유산소성 운동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야구의 경기력을 결정하는 에너지 생산 과정은 95%가 무산소성 과정인 고강도 파워 스포츠다. 운동생리학적으로 무산소성 운동은 탄수화물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므로 고지방의 케토 다이어트는 야구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한국프로야구는 일주일에 6경기, 한 시즌에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대장정이다. 따라서 경기 후 회복이 매우 중요한데 케토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버터와 삼겹살 등 몸에 염증을 유발하는 포화지방을 다량 섭취하게 된다. 당연히 경기 후 회복 능력이 저하돼 이튿날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카고 컵스의 줄리아 롱 영양사에 의하면 메이저리거 사이에서 한때 케토 다이어트가 관심을 끈 적은 있지만 실제로 케토 다이어트를 통해 경기력 향상 효과를 본 선수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참고로 2019년 스프링캠프 기간 줄리안 영양사는 컵스 구단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선수단을 대상으로 케토 다이어트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도쿄올림픽 경기력 향상 자문위원인 김언호 동국대 체육교육과 교수도 케토 다이어트가 이상적인 운동선수 식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케토 다이어트가 경기력을 향상해준다는 정확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만 바라보며 수많은 선수가 선수촌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케토 다이어트가 올림픽 메달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일찌감치 모든 종목 선수들에게 권유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운동 선수에게 올바른 영양 섭취는 또 다른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잘못된 정보로 많은 선수가 경기력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저탄고지 식단인 케토 다이어트를 선택하고 있다. 과거에 KBO의 많은 선수가 잘못된 트레이닝 방법으로 ‘벌크업 후유증’을 겪었듯이 잘못된 식단으로 ‘케토 다이어트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
허재혁 롯데 스포츠 사이언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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