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 불패 신화는 2004년부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역풍으로 한나라당은 지지율 10% 수렁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은 당 대표를 맡아 ‘천막 당사’를 치고 121석 대반전을 거뒀다. 2012년 총선에도 비대위원장으로 구원등판해 152석 완승을 가져왔다. 2006년 지방선거 땐 면도칼 테러를 당했다. 치료 후 일성 “대전은요?” 덕분에 한나라당은 압승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 공천학살을 당한 친박계마저 “살아 돌아오라”는 지원에 힘입어 18명이 생환했다.
□ 신화는 대통령 취임 후 깨졌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유승민계와 비박계 보복 공천으로 자멸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배신자 응징’을 지휘했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의 과반 차지가 점쳐졌지만 예상과 달리 민주당이 1당(123석)이 됐다. 이 즈음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 아니라 ‘여왕’이었음을 알아챘다. 그는 ‘내 나라’를 걱정했고, ‘아버지의 역사’를 다시 쓰려 했으며, 다른 생각을 밝히면 배신자로 간주했다. 그의 왕국엔 주권자 아닌 백성만 있었다.
□ 20대 총선을 40여일 앞둔 4일 박 전 대통령이 옥중 편지를 띄웠다.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 힘을 합쳐 달라”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즉시 “총선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환영했다. 내심 태극기 세력과의 통합으로 중도 표를 잃지나 않을까 계산에 바쁘다. 민주당은 “국정농단에 반성은커녕 옥중 정치로 선거에 개입한다”고 비난을 쏟아내지만 역시 역풍으로 반사이익을 볼지, 범여권 비례정당으로 대응해야 할지 살피고 있다.
□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힘은 영남 권력을 되찾을 인물이라는 데서 싹터, 애국심 의연함 결기 비장미 등의 이미지를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최순실의 도움 없인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의 극치였음이 탄핵과 재판으로 드러났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건 그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파면에도 성찰이나 교훈을 얻지 못한 한국 정치의 문제다. ‘우리가 남이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표를 주는 유권자의 문제다. 아직도 여왕이 필요한가.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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