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정치 재개다”
“천금 같은 말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발표한 옥중서신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이 보인 상반된 반응입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죠. 4ㆍ15 총선을 앞두고 공개된 이 편지를 두고 과연 박 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도 일정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해석도 나오는데요.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는 “마녀의 옥중주술”이라며 비판하고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5년의 형을 선고 받아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선거권이 없는데요. 그의 편지가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정의당은 5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정치인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의 메시지를 담은 옥중서신은 대중에게 자의 또는 타의로 인해 알려지면서 영향을 미쳐왔는데요. 그간 자기 항변 외에도 정치적 사상 또는 의도를 담은 편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해졌죠. 오늘은 여러모로 변모해 온 ‘옥중서신의 활용법’을 살펴보려 합니다.
‘민주주의 열망’ 빼곡히 담은 DJ 봉함엽서
옥중서신 중에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그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고(故) 이희호 여사 등 가족에게 보냈던 엽서와 쪽지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국민들에게 보낸 메시지라기보다는 가족들과 나눈 대화였지만 그의 삶 자체가 민주화 투쟁의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정치와 역사, 경제와 철학, 국내외 정세에 더해 신앙까지 아우르는 깊이 있는 내용으로 학계에서는 현대사의 기록물로도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정권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5공화국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며 고초를 겪었죠. 1976년 3월 3ㆍ1 민주구국선언에 따른 긴급조치9호 위반, 신군부에 의한 1980년 5ㆍ18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투옥됐는데요. 모두 2000년대 들어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신군부의 조작이었다는 것도 밝혀졌죠. 이렇듯 그가 억울하게 투옥된 기간은 약 6년에 달합니다.
당시에는 수용자ㆍ수형자들의 외부 접촉 또는 서신 발송에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는데요. DJ에게는 수감 기간 중 한 달에 단 한 번만 가족들에게 봉함 엽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엽서의 여백까지 이용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눌러쓴 편지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옥중서신의 전체 분량은 A4용지 기준으로 320여쪽에 달한다고 합니다. 200자 원고지 70매 남짓 분량의 글을 한 엽서에 쓰기도 했다고 하네요.
편지에는 DJ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는데요. 1982년 7월 쓴 편지에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by the people(국민에 의한)’이다. 국민의 충분히 자유로운 참여 없이는 아무리 국민의 이익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아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는 “국민이 항상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 선전에 현혹되기도 한다.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이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국민 이외의 믿을 대상이 없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인 것”이라며 ‘참여의 정치’를 강조했죠.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아버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며 “용서는 하느님 앞에 가장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용서는 모든 사람과 평화와 화해의 길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이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신앙과 함께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옥중서신들은 일본, 미국, 스웨덴 등 해외에도 번역 출간됐는데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정치국면마다 측근 격려한 한명숙…남편과의 옥중서신 공개도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경선을 앞두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5년 8월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는데요. 수감기간 동안 지인들에게 정치적 국면마다 옥중서신을 보내 격려하고 자신의 소회와 향후 계획 등을 밝혀 주목 받았습니다.
2015년 12월에는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황창화 노원병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에게 연하장을 보냈고, 그가 이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면서 화제가 됐는데요. 한 전 총리 재임시절 총리실 정무수석으로 발탁, 이후 상황실장과 대변인 등을 맡아왔던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죠. 아울러 한 전 총리는 “세월이 물 흐르듯 빠르게 흘러가고 시련도 아픔도 오래 머물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며 “2016년은 혼탁한 세상이 지나가고 희망이 있는 청아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응원을 전했습니다.
2017년 5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강기석 당시 노무현재단 상임중앙위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요. 한 전 총리의 2017년 8월 만기출소에 맞춰 뒤늦게 공개되면서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정권교체를 “보통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만들어낸 역사의 봄”이라 빗대며 “어떤 일이 닥쳐도 꼭 이겨야 한다는 시민들의 맞잡은 손이 끝까지 문재인을 지켜주고 승리를 얻어 낸 그 헌신성과 간절함에 감동받았다”라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이 편지에서 “저는 봄 지나 여름 끝자락이면 세상과 만난다. 출소 후에는 되도록 정치와 멀리하면서 책 쓰는 일과 가끔 우리 산천을 훌훌 다니며 마음의 징역 때를 벗겨볼까 한다”라고 정계와 거리를 두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죠. 이때 “지금 걷는 길이 비록 가시밭길이어도 두렵지 않다”는 편지 구절 때문에 야당으로부터 ‘사법부 판단에 불복하는 것이냐’라며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는 1967년 결혼 직후 6개월만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되면서 무려 13년을 떨어져 지내게 됐었는데요. 1979년에는 한 전 총리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돼 2년을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공안사건으로 복역하게 됐던 것이죠. 한 전 총리는 17대 대선에서 경선 후보로 나서며 이때 주고받은 5,000여통을 편지를 서한집으로 묶어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추모, 검찰ㆍ정권 비판…MB 옥중서신 대신 ‘옥중페북’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뇌물 등 혐의로 지난 2018년 3월 구속됐는데요. 같은해 4월부터 측근들을 통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옥중서신을 공개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구속 후 처음 올린 게시물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8주기 당시 46용사에게 “통일되는 그 날까지 매년 여러분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비록 직접 찾아가 만나지는 못 하지만 여러분의 조국에 대한 헌신은 결코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했죠.
그는 이후 결국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지게 되자 미리 측근들에게 맡겨 놓은 성명서를 기소 시점에 수감된 상태에서 역시 SNS로 발표합니다. 당시 성명서에서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의 기소와 수사결과 발표는 본인들이 그려낸 가공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초법적인 신상 털기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결과”라며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 본인에 대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죠.
또한 “감정적인 화풀이고 정치보복인가보다 했지만 그것은 저 이명박 개인을 넘어서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깊이 분노한다, 국민 여러분께서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수취인을 ‘국민’이라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이 성명서에도 “문재인 정권이 천안함 폭침을 일으켰다”고 명시하고 “매년 천안함 묘역을 찾겠다고 영령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강조했는데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보석 결정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2심에서 1심보다 가중된 징역 17년형을 받고 재차 법적구속 됐지만,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현재는 풀려나 있는 상태입니다.
朴에게 연서 보낸 ‘비선실세’ 최서원…“동정론 조성” 비판도
비교적 최근에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받는 화제의 인물들도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옥중서신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최서원(최순실)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2016년 10월 구속됐는데요.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8년을 받아 아직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며 수감 중에 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옥중에서 편지를 써 대중에게 사법부 판단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요.
지난해 10월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의 SNS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한 것은 크게 눈길을 끌었죠. 그는 편지에서 “주변의 나쁜 악연을 만나 대통령에게까지 죄를 씌우게 돼 하루가 고통과 괴로움 뿐”이라며 “대통령은 무죄다. 곁에 머물렀던 저만 죄를 지고 갔으면 됐을 문제였다”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같은 인연으로 나타나지 않겠다. 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가슴 깊이 사죄드린다”고 충정을 드러내기도 했죠.
최씨는 같은 달 박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지 못 하게 했다는 이유로 구치소 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는데요. 원래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내려던 것으로 보이지만 최씨의 이 같은 옥중서신이 대중에 공개되면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당으로부터 “대통령 탄핵의 후과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편지가 의도했음직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질타를 받기도 했고요.
과연 총선을 앞두고 작성된 이번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어떤 파급력을 가지게 될까요. 또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게 될까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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