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네덜란드 바흐닝언 대학의 객원 연구원 시절, 눈길을 끄는 연구과제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여 미래 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IoF(Internet of Food&Farm) 프로젝트였다. 연구책임자 조지 비어(George Beers) 박사의 말에 의하면, 유럽 농식품 전 분야에 디지털 네트워크의 구축과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펼치지 않았던 농업 역사책을 꺼내 들었다.
근대 농업 역사에는 두 번의 혁명적 사건이 있었는데 영국의 ‘윤작법(돌려짓기)’과 미국의 ‘녹색혁명’이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한 경작지에 여러 가지 농산물을 교대로 재배하여 지력을 증진시키는 윤작법을 통해 농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1950년대 미국은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는 다수확 품종의 개발로, 현재까지 세계 농업의 중심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이 농업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농업혁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어느 나라가 그 주인공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6년 있었던 ‘알파고 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최종 승리는 알파고가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과연 작물 재배에서 인간과 AI가 경쟁한다면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네덜란드 바흐닝언 대학은 중국 IT기업 텐센트와 세계 인공지능농업대회(Autonomous Greenhouse Challenge)를 개최했다. 나는 인간과 AI가 작물 재배로 정면대결을 벌이는 이 대회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1명의 멤버로 구성된 우리 팀은 대회 준비를 위해 이어령 교수님을 뵙고 조언을 구했다. 이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신농업에서는 AI를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인간과 AI의 조화를 강조했다. 또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인 ‘디지로그(DigiLog)’라는 팀명을 지어 주시며 우리 도전을 응원했다.
작년 9월, 11명의 외인구단 ‘디지로그’팀은 전 세계 AI 인재와 농업 전문가로 구성된 21개의 팀과 예선전을 펼쳤다. 24시간 동안 ‘해커톤(해킹+마라톤)’ 방식의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예선전이 진행되었는데, 한국의 ‘디지로그’팀은 당당하게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 진출한 상위 5개의 AI팀은 네덜란드 베테랑 재배 농가와 실제 유리온실에서 ‘고품질, 다수확 방울토마토’ 재배를 통해 실력을 겨룬다. 작년 12월 시작된 결승전은 올해 6월까지 진행된다.
1회 대회 우승자 데이비드 카친(David Katzin)은 “농가의 기존 재배 방법들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AI는 환경 제어 등 몇 가지 사항에서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 재배 전문가들의 판단을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물론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온실’이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작물 재배에 있어 AI가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요구되는 지금, AI가 농업에 어떠한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 농업 모델은 크게, 대규모 토지를 이용하는 미국식 농업과 미국보다 규모는 작지만 첨단 기술이 접목된 유럽형 기술 농업, 그리고 한국처럼 소농 중심의 아시아 농업이 있다. 디지로그 팀은 이번 대회를 발판 삼아 한국 농업에 적합한 농업 인공지능의 개발과, ‘아시아 농업인공지능대회’ 개최라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아시아 농업의 색깔을 찾아, 한국의 소농가들이 디지털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한다. 이것이 디지로그 팀의 과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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