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화상재판’ 첫 진행
4일 서울고법 305호 법정. 양측 변호사들이 앉아 있어야 할 원고ㆍ피고 측 좌석은 인적 없이 텅 비어 있다. 반면 법정 왼편에 스크린 화면이 걸려 있고, 스크린 안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부산하다. 3분할된 화면 중, 왼쪽 큰 화면에는 원고 대리인, 오른쪽 하단 작은 화면에는 피고 대리인의 얼굴이 보인다. 마스크를 쓴 재판장이 입정해 나머지 분할화면을 채웠다.
“원고 변호사 나오셨습니까”
왼쪽 큰 화면이 재판장의 얼굴로 전환되며 재판이 시작됐다.
서울고법 민사5부(부장 김형두)는 이날 A씨가 B씨를 상대로 “담보금 5억원을 반환하라”며 낸 소송의 변론준비절차를 원격영상(화상) 재판으로 진행했다. 변론준비절차는 변론이 효율적이고 집중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를 정리하는 절차이다.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고 증인신문 계획을 세웠다. 왼쪽 큰 화면은 발언을 하는 사람의 얼굴로 계속해서 바뀌었다. 기록 검토가 필요한 경우 재판장이 화면에 해당 기록을 띄웠다.
양측 대리인은 자신의 노트북에 화상회의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재판부가 미리 개설한 방에 접속해 재판에 출석했다. 재판장이 ‘재판을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에 ‘확인’ 버튼을 누르며 재판은 20분만에 끝났다. 다음 기일도 화상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서울고법이 2일 각 민사재판부에 변론준비절차에서 화상재판의 적극적 활용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화상재판의 기술적 토대는 2018년부터 마련돼 있었고 시범적으로 몇몇 재판부에서 진행하기는 했지만, 일선에서 재판부의 요청으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을 참관한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는 “사실 조회, 증거 결정, 증인 채택을 화상으로 못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민사재판은 당사자주의이기 때문에 재판부와 당사자가 합의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단, 민사소송법상 변론기일은 법정에서 진행해야 한다. 형사재판은 피고인과 직접 대면해야 되기 때문에 화상재판이 어려울 전망이다.
5일엔 민사37부 권순형 부장이 법정이 아닌 사무실에서 화상재판을 진행한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장 개인 컴퓨터로 진행하기 때문에 법정에서 진행하는 전통적 재판의 구조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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