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모든 이슈를 삼켜 버렸다. 봄소식을 대신하는 질병본부 상황 보고를 들으며 ‘갇혀’지내다 보니 일상의 활기가 새삼 그리워진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3월 첫째 주는 ‘3ㆍ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로 여성 인권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는 축제 분위기였을 것이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이는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 시상식을 하고, 성평등 디딤돌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성평등 걸림돌에게는 야유와 비난을 보내면서 성차별 사회를 재조명했을 것이다. 보라색 물결을 이루는 여성 행진이나 성별 임금격차에 저항하는 ‘3시 조기 퇴근’ 캠페인도 즐거웠을 텐데. 생기 없는 올해 봄은 너무 춥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조차 최소화됐다.
우리나라에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두 개의 법정 기념일이 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과 여권통문의 날(9월 1일)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2월 28일 미국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서 1만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한다. 1975년 유엔이 공식적인 기념일로 정하면서 지금은 전 세계에서 성평등의 성취를 기리고 과제를 점검하는 글로벌 기념일이 되었다. 유엔은 2020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해시태그 #EachForEqual, #IamGenerationEquality와 함께 양팔을 안쪽으로 나란히 해 등호(=)를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여성의 날의 상징은 ‘빵과 장미’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반 기본권을 의미한다. 러트거스 시위 직후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의 연설에 빵과 장미가 등장했고,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이 ‘빵과 장미’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빵과 장미’는 세계여성의 날과 여성운동의 대표 슬로건이 되었다. 존 바에즈, 존 콜린스, 존 덴버 등의 노래와 영화를 통해 대중문화 아이템으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토종’ 여성의 날이라 할 수 있는 9월1일 ‘여권통문의 날’이 있다. 20세기가 아직 시작되기도 전, 1898년 채택된 여권통문은 세계여성의 날 시작보다 20년이나 앞선 여성 선언이다. 여권통문을 만든 서울 북촌 양반가 부인들은 여성의 교육권, 경제권, 정치권을 주장하고 고종황제에게 여학교 설립을 상소했다. 부인들이 자발적으로 갹출하여 여학교를 세우고, 이 학교를 지원할 여성단체를 설립한다. 선교사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첫 사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단체인 찬양회의 태동이다. 남녀가 유별하던 조선 말기, 양반가 여성들의 이런 적극성은 지금 다시 보아도 놀랍다. 당시 독립신문은 1면에 여권통문 전문을 게재하면서 ‘김 소사 이 소사 하는 부인들이 이런 선언을 했다 해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왜 남성의 날은 없는데 굳이 ‘여성의 날’이 필요한가?”, “이미 여성의 지위가 충분히 높은데 별도의 ‘여성의 날’이 왜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유엔에서는 성평등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핵심적인 ‘비즈니스 이슈’이고 사회발전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유엔은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17개 목표 중 하나로 성평등을 명시했고 선진국에서는 성평등이 이미 국정기조로 자리 잡았다.
2020 대한민국의 ‘빵과 장미’는 안녕하신가? 여성의 날은 여성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작고한 정치인 노회찬 의원은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14년 간 여성노동자와 여성운동가들에게 장미 한송이를 보냈다. 올해는 노회찬 재단에서 ‘성평등 장미’를 나눠준다. 3월 8일 하루쯤 주변에서 수고하는 여성들의 ‘피 땀 눈물’ 앞에 장미 한 송이 건네 보면 어떨까?
이번 코로나19 때문에 3월에 못 다한 축제는 9월 1일 여권통문의 날에 더 크게 하기로 하자.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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