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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엿한 혼밥시대

입력
2020.03.0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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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사회에 ‘공동체’라는 단어가 새 옷을 입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제는 우리 사회에 ‘공동체’라는 단어가 새 옷을 입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멋쩍게 ‘혼밥’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색해 할 것 같지 않다. 혼밥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과하게 개인주의적인 사람을 비아냥거리려고 쓰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간의 코로나19 대란으로 인해 혼밥은 이제 권리를 떠나 남을 위한 배려마저 되어 버렸다. 사내 식당에서는 지그재그로 앉거나 한쪽 방향으로만 앉아 밥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본래 우리민족이 독상 받기를 좋아하던 혼밥족이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식사문화는 반대로 매우 집단 친화적이다.

유독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며, 개성보다는 일체성을 더 나은 덕목으로 여겨 왔다. 남자 대부분이 겪는 군대 문화의 영향일까? 어느 나라보다도 친족성이 깊어서일까? 아무튼 우리는 개인적 권리를 누르고서라도 집단적 일원화에 순응 할 것을 강요받는 편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잘되어야 진정한 행복이라는 로망을 교육과 문화 여러 방면으로부터 주입받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 같이 같은 패딩을 입어야 안심이 되나 보다. 몇 해 전 어느 고등학교 앞 하굣길에서, 나는 한 무리의 검은 펭귄들이 몰려나오는 줄 알았다. 우리는 남의 개인사에도 오지랖을 떤다. 주변의 솔로는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고, 너도 나도 결혼 안 하면 공동체의 이단아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도 자명하다. X세대 이후 Z세대에 이르는 동안, 개성을 집단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진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도 있겠지만, 개인의 행복이 곧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공식이 더 큰 점수를 받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것은, 개인주의적 편리를 극대화해 온 테크놀로지의 상업적 발달이다. 2020년의 우리는 혼자서도 충분히 집단의 의무를 해내고 정신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꼭 모여서 회의하지 않아도 된다. 모바일기기만 있으면 단톡방을 열고 서로 얼굴까지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기존의 도서관 개념은 물러간 지 오래다. 패드를 들고 와이파이가 접속되는 어느 공간에든 앉아 있으면 그곳이 ‘나’의 도서관이 된다. 필요한 논문이나 이미지, 영상, 음악 자료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해결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개인화만 첨예화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외국에 이민쯤 가면 본고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쉽지 않다. 알래스카에 숨어 지내도 몇십 년 전 동료들이 그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밴드에 불러들이고 나가려면 꽤 눈치가 보인다. 물리적 한계를 비웃듯, 우리는 마구잡이로 이 밴드 저 단톡 안에 묶여 버렸다. 물론 행복하게 여기는 가상공간도 많다. 덕택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번개팅도 한다. 하지만 즐기지 못했다면 그대는 어느 가상공간의 유령으로 지낸 지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개강이 늦추어졌다. 겨울방학이 길어진 것 같은 착각에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해 서운하다. 어쩌면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야 될지도 모른다. ‘힘써 모이기를’ 권장하던 교회들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주일예배를 개개인에게 맡겼다. 전쟁과 일제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교회가 모이기를 스스로 저버린 적이 없었으니 이게 웬일인가 싶다.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주일에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온라인을 통해 ‘혼예배’를 드렸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공동체’라는 단어가 새 옷을 입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처음 LP 음반이 나왔을 때 극장의 가수들이 좌절했다고 한다. 누가 오프라인의 음악을 들으러 오겠냐고 한탄했다. 하지만 음반사업의 성장은 오히려 극장의 공연을 찾는 사람도 증가시켰다고 한다. 혼자 집에서 기기로 듣다가 여럿이서 환호하며 그 음악을 생으로 듣는 짜릿함을 경험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상생할 것이다. 혼밥이 당당해질수록 회식 자리는 더 즐거워질 것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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