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선전시 교민 2명 인터뷰, 아내와 두 딸 입국과정서 14일 격리
검사 음성 판정… 대구ㆍ경북 주민번호 트집잡아 24명 귀가 막아
“후베이성 호적이라도 이러진 않아”, “집으로 보내달라” 호소
인권유린에 외교당국 깜깜이, 광둥성과 선전시는 책임 떠넘기기
“아이는 줄곧 서울에서 자랐어요. 아내는 출생지만 경북인데 가족 모두 강제 격리하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달 28일 낮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중국 광둥성 선전시 바오안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190여명 중 24명이 4일까지 엿새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중국 측이 갑자기 “대구ㆍ경북과 연관된 승객들은 14일간 지정시설에 격리한다”고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구ㆍ경북을 콕 집어 입국 제한조치를 시행한 첫 사례다.
승객들은 남편이 먼저 중국에 와 있고 새 학기에 맞춰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이 사전에 아무 통보도 없이 한국을 겨냥한 방역 수위를 높이면서 우리 교민들은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이 격리돼 있는 두 명의 교민과 3일 전화 통화가 됐다.
대구ㆍ경북 관련되면 모두 14일 격리
교민 A씨는 아내와 두 딸(6살ㆍ3살)이 호텔에 격리돼 있다. 아내의 주민등록번호 소재지가 경북이라는 이유로 격리 대상에 포함됐다. 큰 딸은 서울에서 태어나 출생신고만 경북에서 했다. 선전시 당국은 격리 기준에 대해 “최근에 대구ㆍ경북을 방문했거나 대구ㆍ경북지역 주민번호를 가진 사람”이라고 밝혔다.
A씨는 “중국인의 경우에도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최근에 후베이성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단지 후커우(戶口ㆍ호적)가 후베이성이라는 이유로 격리된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면서 “자가격리로 해달라고 아무리 요청했지만 대꾸조차 없었다”고 성토했다.
그래도 둘째는 서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터라 집에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귀가자 명단에 없었다. A씨는 “한 명이라도 대구ㆍ경북과 연관된 경우 가족 승객 전체를 함께 격리한다며 말을 바꿨다”고 전했다.
교민 B씨도 비슷한 경우다. 아내는 주민번호 소재지가 경북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줄곧 수도권에서 살았다. 두 딸(17살ㆍ15살)은 각각 서울과 경기에서 태어나 대구ㆍ경북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엄마가 경북 주민번호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함께 격리됐다. B씨는 “영사관에서 ‘아이들은 귀가할 수 있을 것’이라더니 도착 이틀째인 29일 밤 갑자기 ‘아이들도 집에 못 간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초엔 전체 승객 190여명 가운데 대구ㆍ경북 주민번호라는 이유로 18명이 격리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대구ㆍ경북과 무관한 자녀 6명이 포함되면서 선전에서 호텔에 격리된 한국인 승객은 24명으로 늘었다.
핵산 검사 모두 음성… 집에 가려 하자 격리 통보
24명의 교민과 가족들은 공항에 도착할 때만해도 격리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도착 승객 가운데 중국인 1명이 발열 증세를 보인 뒤 주변 승객 70여명이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와 바로 귀가했고, 26일에는 승객 가운데 아무도 이상 징후가 없어 모두 별 탈 없이 집으로 향했다.
A씨는 “27일 인근 광저우로 들어오는 항공편부터 승객 전원 대상 핵산 검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가족들도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8일 도착한 승객들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핵산 검사를 받았다. 자연히 하루만 지나면 집으로 가는 줄만 알았다.
29일 낮 190여명 승객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광저우시 총영사관 소속 선전시 담당 영사가 달려오더니 “대구ㆍ경북지역 관련 승객은 격리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방침이 바뀌었다는 언질조차 없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그날 밤까지도 정확히 누가 집에 돌아가는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불안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B씨는 “대구ㆍ경북 주민번호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자국민의 인권이 유린되는데도 영사관은 전혀 상황 파악을 못하더라”면서 “중국 측에 단 하나의 요구도 관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대한민국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도 고온에 탈진할 뻔… 광둥성ㆍ선전시 책임 떠넘기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격리 생활은 하루하루 바늘방석이나 마찬가지다. B씨는 “처음 묵은 공항 근처 호텔은 첫날 실내온도가 30도까지 치솟는데도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아이들이 탈진해 병원에 실려갈 뻔했다”면서 “다른 엄마 한 분이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2일부터 선전과 한국을 오가는 항공편이 아예 끊기면서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다.
중국 당국자들도 주민번호 소재지를 트집 잡아 한국인을 격리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공감했다고 한다. B씨는 선전시 당국에 따졌더니 “자기가 봐도 이해가 안된다고, 음성 판정이 나왔는데 주민번호 때문에 격리하는 건 불합리하고 과도하다고 혀를 차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광둥성과 선전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발뺌하고 있다. B씨는 “선전시는 ‘위에서 막무가내로 지시가 내려오니 우리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고 반면 광둥성은 ‘우리는 허가하지만 선전시가 반대해서 어쩔 수 없다’며 딴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 환자 발생을 억제하라고 엄명을 내린 터라 지방정부가 앞다퉈 방역을 강화하며 충성경쟁을 하는 셈이다.
24명의 교민이 남아있는 호텔에 1일 추가로 도착한 승객들이 검사를 받으러 하룻동안 머물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추가 승객 가운데 확진 환자가 발생할 경우 격리 중이던 24명은 꼼짝없이 호텔에 갇히거나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B씨는 “중국의 상황이 엄중한 때에 또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를 일”이라며 “우리 가족들은 음성 판정을 받았으니 제발 다른 호텔로 옮겨달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백 번 호소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1일 도착 승객들의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꿈쩍도 않던 중국 측은 2일 밤 갑자기 호텔을 옮기겠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24명의 교민들은 야반도주하듯 난산구로 이동했다. 교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승객들의 거주지 관할 지자체가 호텔 체류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A씨는 “막내가 피곤에 지쳐 버스에서 완전히 쓰러져 있더라”며 “이렇게 강행군을 하면 건강하던 어른도 아프고 열이 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관문에 대못을 박아도 좋다, 집에 보내달라
2일 밤 호텔을 옮기면서 ‘14일 격리기간’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중국 측은 “새로운 격리시설로 이동한 만큼 14일을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부터 당일까지의 격리기간을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교민들은 꾸역꾸역 넘겨온 불쾌한 시간을 사흘 더 보내야 할 판이다. 한국발 승객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는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교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A씨는 “중국 당국이 억지주장을 하길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일단 13일 오후 1시에 호텔을 나오는 것으로 약속을 받았지만 100% 지켜질지는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측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적극 나서지 않는 것으로 비치는 주중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 외교부를 향한 불만도 상당하다. 특히 인근 광저우나 홍콩과 달리 선전에는 상주 영사가 없어 교민들이 푸대접을 받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어쨌든 하루 속히 아내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자가격리’를 거듭 요청하고 있지만 당국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B씨는 “우리 집 문 앞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대못을 박아도 좋다”면서 “제발 가족들을 속히 집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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