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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입력
2020.03.0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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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열기가 이어지는 뒤안길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근본적으로, 모금 이후에 어떤 일에 어떻게 쓰였는지가 투명하게 보여지는 시스템이나 소통이 부족한 탓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기부의 열기가 이어지는 뒤안길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근본적으로, 모금 이후에 어떤 일에 어떻게 쓰였는지가 투명하게 보여지는 시스템이나 소통이 부족한 탓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릴 적 기억 속에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린 여주인공만 떠오르고,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찾아보니, 1960년도에 스페인에서 만들어져 국내에는 77년에 개봉되었던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원어 제목은 ‘광선(Un rayo de luz)’ 인데 우리말 제목은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살아오면서 늘 듣던 말이고, 모두에게 쉽게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은 역설적이라서 내 기억에 남아있었나 보다.

갑자기 이 영화를 소환하게 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 때문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갑자기 생활신조로 등장했다. 이로 인해 재택근무, 삼시세끼,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화되고, 행사 및 모임은 계속 취소되고 있고, 아직 완전히 체득되지 못한 재택근무, 화상회의, 메신저 협업이 우리 삶으로 훅 들어와 버렸다. 많은 현실이 길도 멀고, 눈에서도 멀어지게 된 것이다.

조용한 오프라인 일상과 대조적으로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정보, 정치 논쟁과 팩트 배틀은 갈수록 나를 지치게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에너지를 준 것은 코로나19 피해를 돕고, 격려하자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이 지인을 추천해 그룹을 만들고, 대구 의료진과 질병관리본부에 격려 물품을 보내고, 피해시민을 돕는 모금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모금된 돈이 바로 집행되고, 투명하게 공유되고, 받은 분들의 감사인사가 도착하기도 했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도,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어도, 기술의 발달은 마음과 뜻을 빠른 시간에 묶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 공고히 연대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1월 30일부터 2월 27일까지 한달간, 전국적으로 530여 억원이 모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기부의 열기가 이어지는 뒤안길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공신력 있는 단체를 통해 기부를 받고는 있지만, 이 기부가 어떤 일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에 전달되어 힘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금 이후에 어떤 일에 어떻게 쓰였는지가 투명하게 보여지는 시스템이나 소통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스템 미비는 우리 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해 전세계를 안타깝게 했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재건축 성금은 지난 4월 기준으로 무려 10억달러(1조 1,351억 원)가 모였다. 재건축 비용이 11억 3,000만 달러~ 23억 달러 정도라고 하니 목표액에 못 미치더라도 놀라운 모금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대한 모금 공식 사이트(Rebuild Notre-dame)에 들어가보니 한 사이트 내에서 정부에서 인정한 모금 기관들이 있고, 각각의 기부방법, 모금현황들이 찾기 쉽게 되어있었다. 기대가 컸지만, 이 모금의 경우에도 사용처가 재건축이라, 설계나 시공 계획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라 그런지 모금의 사용 계획 등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제 기후변화, 바이러스의 진화 등으로 크고 작은 재난은 자주 맞닥뜨리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이와 함께 모금도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데이터 사이언스 시대에 마음이 모여서 하는 일이 보다 투명하게 보여지고, 수요자들의 꼭 필요한 요구와 기부금이 잘 매칭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더 많은 마음과 정성이 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면, 공간이 멀더라도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따뜻하고 공고한 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워질 것이다.

이지윤 플레시먼힐러드 이해관계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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