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의사회 의장 ‘보건소 SOS’ 요청에 개원의 11명 검체 채취 자청
서울 송파구 방이동 강동성신의원 김석원(58) 원장은 요즘 오후6시반쯤 병원 문을 닫은 뒤 걸어서 10~20분 거리의 송파구 보건소로 다시 출근하고 있다. 보건소에 설치된 선별진료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신종 코로나 검체를 채취하는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보건소에서 11년째 하던 외국인 노동자 진료 봉사가 신종 코로나 사태로 중지된 뒤 선별진료소 봉사로 방향을 틀었다. 김 원장은 “존경 받고 싶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며 “아들은 저와 달리 훌륭한 의사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의료 봉사에 나섰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지역 의대에 합격한 아들 세연(21)씨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겠다는 각오였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는 가운데 현직 의사들이 선별진료 업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는 말처럼 참 의사의 사명을 실천하는 이들의 행동에 한계에 다다랐던 지역 공공 의료체계도 점차 숨통이 트이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송파구 및 강동구, 구로구, 관악구, 성북구 등에서 구의사회를 중심으로 뭉친 의사들이 선별진료소 의료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천 미추홀구의사회도 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의사 2명을 선별진료에 지원하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3일 기준 12명) 송파구에선 개원의 11명이 의료 봉사를 자청했다. 이들은 1일부터 개인병원 진료가 끝난 뒤 휴식 시간을 반납하고 선별진료소로 향하고 있다. 평일 오후 7시부터 10시,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가 봉사시간이다.
송파구 개원의들을 불러 모은 건 송파구의사회 회장인 서대원(54) 행복한서내과의원 원장. 지난달 28일 긴급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건소장의 요청을 받은 뒤 송파구 개원의들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에 SOS를 올리자, 하루 만에 8명의 의사가 흔쾌히 동참을 약속했다고 한다. 의료지원에 나선 의사 가운데는 봉사를 하고 싶어 급하게 의사회에 가입한 젊은 개원의나 대구에서 의사 인턴을 하고 있는 자녀의 부모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에서 ‘마천동 슈바이처’로 불리는 서 원장 또한 병원에 가기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를 20년간 보살펴 온 의료 봉사의 달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단 1,000원의 진료비를 받고 있는 서 원장은 “신종 코로나 공포에 휩싸인 지역 사회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기존 보건소 인력들이 한 달간 쉼 없이 일해 많이 지쳤다는 말을 듣고 외면할 수 없었다”는 서 원장은 “개원의는 평소 레벨D 방호복을 입을 일이 없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피로도도 상당했다”면서 “현장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함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민간 의료진이 공공 의료를 돕는 것을 사회의 유전적 발전 과정의 하나에 비유했다. 그는 “미래에 또 다른 전염병이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민간 의료가 비상시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서는 이날부터 서초구 소방학교 등 3곳에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지나가기)’ 방식의 차량 이동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면서 민간 의료인력의 봉사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3일 오후 2시 기준 총 41명의 의사가 지원했다. 센터 관계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지원자는 20명이었는데 하루 만에 21명이 추가로 신청했다”라며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감안하면 신종 코로나도 조만간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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