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질병 등 지구적 문제 속출하는데
대응은 국제사회 아닌 개별국가 수준
틈바구니 낀 한국은 외교역량 절실
인류는 국경을 준수하지 않는 많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대응방식은 좀처럼 국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월27일 신종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가 결정적 순간에 와있다고 하면서, 바이러스는 국경을 존중하지 않으며 인종과 민족, 국가의 빈부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인류는 유례없이 시공이 압축된 세계화를 이루었고 이번 사태는 세계화를 올바르게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한 나라, 한 집단, 한 명의 개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문제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현 국제질서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첫째, 인류는 국경을 준수하지 않는 많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대응방식은 좀처럼 국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쓰나미, 테러, 난민 등 많은 인간안보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단위의 세계에 살고 있고 지구적 문제와 국가 주권은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불러온다. 1948년에 창설된 세계보건기구는 세계 차원의 공중보건 문제를 다루는 UN 산하의 국제기구로 194개국의 회원국을 포괄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권한과 역량이 미진하다. 전문성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예산, 인력, 법적 권한이 부족하고 개별 회원국들, 특히 강대국의 재정적 지원과 정책적 지지에 의존한다. 재정지원에서 미국과 중국이 1, 2위를 차지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원금을 줄이려는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증가해왔다.

세계보건기구가 보건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 예산, 인력 등의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개별 회원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감염병 위기의 경우 국가들의 자발적이고 투명한 정보 제공과 국제적 재정지원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과 관계 설정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의 명칭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위기 수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을 둘러싸고 세계보건기구는 전문성과 정치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친중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세계화 시대에 작동하는 ‘국가주권의 덫’이 근본적 문제이다.

둘째,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된 현재, 국제보건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협력은 눈에 띄게 부진해졌다. 과거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에볼라의 경우 미중은 공통의 이익을 위해 협력했다. 이번 사태에서 미국은 중국의 대응을 평가하고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의 투명성 부족과 시진핑 주석에 집중된 정치체제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경제력 약화, 정치체제의 불안 요소 증가, 그리고 미국 기업들의 본국 귀환 및 일자리 창출 등 미국의 수혜 요인에 대한 기대감도 표출된다. 중국은 중국대로 가장 먼저 중국 여행을 금지한 미국의 조치를 비판하고 미국의 지원이 과연 순수한 것인가 의심하고 있다. 과거 보건문제는 미중 간 불신을 완화하고 협력을 제고하는 유용한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보건 문제마저 ‘투키디데스의 덫’에 빠진 양상이다.

1단계 무역협정을 어렵게 체결한 미중 양국은 양자 경제관계의 조정과 세계 경제질서 재건을 위해서라도 협력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 무역협정의 정상적 이행이 양국 공통의 이익이 될 것이다. 중국 역시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불안을 느끼는 외국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개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 다음으로 감염 피해가 많은 한국이야말로 국가주권의 덫과 투키디데스의 덫 모두에 빠져있는 양상이다. 세계적 보건 거버넌스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도 혹여 반중 정책으로 보일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눈물겨운 방역 노력 속에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건강의 핵심 자산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제보건규범을 선도하고 중견국의 외교역량을 강화하여 강대국의 지정학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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