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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 동요하는 일본 사회

입력
2020.03.04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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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7>전염병 관련 정보 투명성에 대한 한일 비교

‘도쿄 올림픽 개최까지 147일’이라는 구호 옆에 “중지다 중지”라는 낙서가 있는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이, 일본 방역 당국에 대한 풍자의 재료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도쿄 올림픽 개최까지 147일’이라는 구호 옆에 “중지다 중지”라는 낙서가 있는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이, 일본 방역 당국에 대한 풍자의 재료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올림픽을 취소하려면 지금”, 냉소적인 인터넷 여론

지난 주말 일본의 인터넷에서 “올림픽을 취소하려면 오늘이 최고의 타이밍”이라는 냉소로 가득 찬 정보가 입소문을 탔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긴장하는 가운데, 몇 달 뒤로 다가온 도쿄 올림픽을 정상 개최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난 주말이 ‘최고의 타이밍’으로 거론된 것일까.

작은 소동의 발단은, 오래된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 속 한 장면이었다. 동명의 만화 원작자 오토모 카츠히로가 제작에 참여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SF 명작이다. 당시로부터 반 세기 뒤, 암울한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다는 설정이어서 이전부터 적지 않게 화제가 되었다.

문제의 장면은, “도쿄 올림픽 개최까지 147일, 국민의 힘으로 성공시키자”라는 간판이 내걸린 공사장 벽면의 클로즈업이다. 올림픽 성공을 다짐하는 구호가 무색하게 벽면은 폐허처럼 지저분하고, 그 옆에는 “중지다, 중지”라고 내갈긴 낙서가 선명하게 보인다. 도쿄 올림픽의 개최 실패를 암시하는 불길한 장면이다. 7월 말로 예정된 올림픽 개회식까지 147일이 남은 시점은 바로 2월28일, 다시 말해 지난 주말이 이 장면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점이었다.

‘개최까지 147일’ 장면은 여기저기에서 인상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 날에 맞춰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에서는 <아키라>를 재방송했다. 소셜미디어에는 ‘개최까지 147일’이라고 쓰여진 허름한 벽면과 낙서를 재현한 실사판 사진이 올라온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19’ 사태로 올림픽을 중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지금의 상황을, 오래된 SF 애니메이션의 음산한 전개와 연결짓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제라도 올림픽 중지를 선언한다면 적어도 애니메이션 팬들은 만족하지 않겠는가”라는 풍자는 도쿄 올림픽을 의식한 나머지 전염병 대책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낮은 감염 수치에도 불구하고 커져만 가는 불안감

‘코로나19’와 관련해 공식 발표된 수치만 보자면 (일본은 집단 발병이 확인된 크루즈선 상황을 공식 집계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심각성은 한국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감염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한국, 이탈리아, 이란 등에 비해 확진자는 대단히 천천히 증가하고 있으며, 사망자 수도 한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발표에 근거해서 일본이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시민들은 오히려 지역 사회 감염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가 아닐지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곳곳에서 마스크의 재고가 동나고 있고, 마스크와 같은 재료로 제조된다는 정보가 나돈 화장실용 휴지는 사재기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천 명의 확진자가 확인된 한국의 상황이 오히려 차분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도 터져 나오지만, 극단적인 동요와 불안 심리보다는 감염 확산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대응 방법에 대한 의견 교환이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하자면 오히려 일본 시민들의 초조함이 ‘패닉’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지진과 화산 분화 등 빈발하는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평정함과 질서를 유지하는 시민 의식으로 ‘재해 선진국’이라고 평가받아온 일본 사회이다. 과거와는 거리가 먼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보 투명성의 한일 비교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관련 정보의 투명성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한국과 일본 방역 당국의 대응이 분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국의 방역 당국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감염자 현황과 방역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시도별로 감염자의 이동 경로와 체류 시간이 시시콜콜하게 공개된다. 방역 당국, 지역자치단체, 전문가, 심지어는 지역 주민들까지 나서 관련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공유하고 있다. 너무 자주 업데이트되는 전염병 ‘팩트’ 때문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이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서울시의 ‘코로나19’ 현황 사이트(왼쪽)에 비해 도쿄도에서 공개하는 전염병 관련 정보는 접근성이 낮고 내용도 빈약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서울시의 ‘코로나19’ 현황 사이트(왼쪽)에 비해 도쿄도에서 공개하는 전염병 관련 정보는 접근성이 낮고 내용도 빈약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대조적으로, 일본에서 공유되는 전염병 관련 정보는 양과 질 모두 비참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감염자 수와 광역별 현황이 발표될 뿐, 감염 경로도 감염자의 동선에 대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전염병 관련 페이지에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감염 현황과 “확산 방지에 협조해 달라”는 공허한 가이드라인이 조악하게 링크되어 있을 뿐인데, 지역 정부와 주민들로부터 “정부가 아무런 정보도 공유하지 않는다”는 불평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 지자체에서는 관할 지역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예정했다가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전에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60대 확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요코하마에서 나고야로 이동했다”는 수준의 정보가 공유되었는데, 이렇게 구체성이 결여된 동선 정보가 개인의 전염병 예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자신의 동선이 공개되는 데에 부담을 느끼는 당사자의 마음은 이해한다고 해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성의도 없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공개되는 정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1월 말에 해외 여행객의 방문이 급증했던 오사카, 교토 지역의 확진자는 몇 주째 한자리 수에 머무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예외없이 높은 전염성이 확인된 바이러스가 유독 일본에서만 느릿느릿 전파된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시민들에게 엇갈린 메시지를 남발하는 방역 당국의 대응이 혼란을 부채질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에서 하선한 승객들을 격리하기는커녕, “문제없다”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 귀가를 허용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일선 학교에는 휴교 명령이다. 그 와중에 3월1일에는 올림픽 국가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도쿄 마라톤’ 행사를 강행했다. 일반인이 참가하는 레이스는 취소되었지만, 길거리에 7만명이 넘는 관중이 모인 거대 이벤트였다.

확진자가 치솟을 것이 뻔한데도 엄청난 건수의 검사를 단행하고 그 결과를 시시각각 공개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 방역 당국의 논리적 허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검사 능력은 충분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루 수백 건도 검사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올림픽을 의식한 나머지 사태를 왜곡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대유행 이후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는 신종 바이러스가 전세계에서 5,00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이 악명높은 바이러스는 특히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는데, 도시의 방역 대책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크게 달랐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 당국은 감염 위험성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도 20만명이 운집하는 개선 퍼레이드를 허용하는 등 방역 초기에 낙관적으로 대응했다. 대조적으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시 정부는 재빨리 전염병 유행을 선포하고 학교, 극장, 교회 등 공공장소 폐쇄를 강행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시 정부의 대책은 불편을 느낀 일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인구 대비 사망자 수는 세인트루이스가 필라델피아의 2분의 1에 불과했다. 저항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인 선방 조치가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대유행이 예고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상반된 대응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자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전염병과 싸우고 있는 한국의 방역 당국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대의’ 때문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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