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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나라를 통째 바칠 지도자는 없다

입력
2020.03.02 18:00
수정
2020.03.02 20: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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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면 입국금지’ 안 한데 비난 집중

방역 실효성, 경제 파급 면밀히 따져 봐야

현실 직시한 비판이 코로나 극복에 도움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소위들의 선별진료소 훈련을 참관한 뒤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소위들의 선별진료소 훈련을 참관한 뒤 발언하고 있다.

전염병과 권력 리더십은 불가분의 관계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정부의 궁극적 목적인 이상 당연한 이치다. 전염병 발생은 그 자체로 정권에 악재다. 확산 속도만큼 부정적 여론도 빠른 속도로 퍼진다.

공교롭게도 신종 전염병은 참여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5,6년 주기로 유행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사스가, 이명박 정부 때는 신종 플루가 유행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메르스가 발생했다. 종합적인 평가는 사망자 숫자보다는 초동 대처와 컨트롤타워, 방역과 정보 투명성 등 전반적인 관리 능력에 따라 내려졌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는 ‘사스 모범 예방국’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코로나19와 한창 싸움 중인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초반부터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공세에 직면해 있다. 비판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진작에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어야 했는데 중국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 전국 확산을 초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취소로 총선 전략이 망가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중국 눈치보기’라는 강력한 프레임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쟁점화될 공산이 크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먼저 ‘처음에 중국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었는가’가 입증돼야 할 것이다. 알려진 대로 코로나 확진자 급증세는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촉발된 집단 감염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 신천지 내부와 법무부 출입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신천지 교인 수백 명이 지난해 12월까지 모임을 가졌고 지난 1월 양국 간 신천지 신도 교류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우한의 포교자나 교인이 잠복기 상태로 1월에 한국에 입국한 뒤 신천지 교회 집회에 참석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중국인 입국 금지를 내린 미국에 이어 다음 날(2월 3일) 한국이 후베이성뿐 아니라 전역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어도 대규모 확산은 막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중국 등에서 감염돼 입국한 중국인이 7명에 불과하고 이들이 직접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단 한 명뿐이다. 서울에서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럽연합이 이탈리아 코로나 확산에도 국경 폐쇄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방화벽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전면 금지를 취했을 때 우리에게 미칠 경제적 후폭풍을 감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 건강이 달린 방역이 최우선적 가치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감염 전문가들과 관련 학회에서도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면 경제ㆍ외교 요인도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재계에서는 중국 입국 금지가 시행됐으면 수출과 제품 생산에 지금보다 훨씬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고 있다. 자동차 부품 한 가지가 막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하다 못해 마스크의 원자재도 중국에서 조달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 내 경제ㆍ산업 관련 부처에서 중국 입국 금지에 한사코 반대한 것도 재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균형 외교’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침묵을 지키던 보수 진영은 지금 문재인 정부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친다” “시진핑의 노예가 되려느냐”며 비난을 퍼붓는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그저 미국이나 중국이 좋아서 편드는 지도자는 없다. 미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국익을 수호해야 하는 게 우리 지도자의 숙명이다. 감염병에 ‘정치’를 덧씌우느니 어떻게 국력을 키우고 중국에 예속된 경제 구조를 바꿀지를 고민하는 게 더 현명하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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