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상임위원회 안건으로 올라가게 됐다. 국민 목소리를 입법으로 연결하는 통로를 제공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국민동의청원이 ‘진영 대결’의 창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청원인 한모씨는 국회 홈페이지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 탄핵에 관한 청원’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 생명을 위협했다”고 탄핵을 촉구했다. 이후 나흘 만에 10만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지난 1월 개정된 국회청원심사규칙은 ‘30일 내 10만명 이상 동의’ 요건을 갖춘 청원을 소관 상임위에 자동 회부하도록 했다. 해당 청원이 대통령 탄핵 소추를 다루는 법제사법위 등에 법안에 준하는 안건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청원이 실제 탄핵 소추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탄핵까지 가려면 ‘상임위 내 청원심사소위→상임위 전체회의→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첫 관문인 청원심사소위에서 여야는 청원을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지 여부를 논의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기각될 공산이 크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대통령의 ‘부실 대응’이 헌법상 탄핵 소추 사유가 되기는 어려워서다. 또 20대 국회 종료(5월29일)까지 87일 밖에 남지 않아 물리적 시한도 부족하다. 14대 국회 때인 1995년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청원이 접수돼 법사위에 올라갔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전례가 있다.
청원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만명 이상의 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세들이 청원을 악용하면 소모적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달리 국민동의청원은 국회가 청원을 심사할 의무가 부여된다. 국회 관계자는 “국민동의청원에는 최초 100명 이상의 찬성을 받은 청원을 7일 내 심사해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청원을 공개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데 이번에 작동하지 않았다”며 “인원 요건만 갖추면 국회가 청원을 심사해야 하는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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